차(茶)와 더분 10년
차와 인연을 함께한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건만,
빗방울이 땅을 향해 시위를 당기듯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대인관계부터 마음 깊은 곳의 사정에 이르기까지
종류 또한 다양했다.
‘차’라는 이름의 조류에 적응하는 일이
어찌 쉬웠을까.
그럼에도 여기까지 걸어온 자신에게
작은 격려 한 조각은 건네고 싶다.
질책하고 싶은 부분도 적지 않다.
차와 사람을 대함에 있어
미숙했던 순간 하나하나가
지금도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숨어들었던 시간들은
이따금 후회로 되살아난다.
하지만 과거가 부끄러운 만큼
지금의 변화 또한 자랑스럽다.
허물 것을 허물고, 버릴 것을 버린 모습이
조금은 자유롭고, 조금은 당당해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도 미숙하기 짝이 없다.
시간의 길이가 무색할 만큼
부족한 것 투성이다.
다만 그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에 대한 나만의 관점,
차로 맺어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차를 닮아가는 법.
이 모든 것이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금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를 향한 불만,
고착된 버릇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산더미다.
과거의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차’와 '철학'을 택했다.
온전한 선택이었다 말하긴 어렵지만,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믿고 싶다.
당장 상황을 뒤집지는 못해도,
점적(點滴)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변화는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성질이 무엇인지는
훗날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앞으로도
좌절과 성취의 교차로에서
수없이 방황할 것이다.
이정표 사이 어디쯤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환희를 느끼며
답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겠는가.
기나긴 논의에
언젠가 마침표를 찍게 된다면,
그 순간 어떤 형태로든
자유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다시 차와의 대화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