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잎처럼 익어가는 사람의 생(生)
‘제다(製茶)’란 차를 만드는 일을 뜻한다.
커피의 로스팅과 같은 개념이다.
야생의 찻잎이 한 잔의 차가 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자,
향미와 보존성을 부여받는 결정적인 단계다.
아무리 무성한 차밭을 바라본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차가 완성되지 않는다.
커피 생두가 스스로 원두의 형상을 갖추지 않듯,
찻잎 역시 손을 거쳐야 비로소 진정한 차가 된다.
우주의 이치가 그러하듯,
제다 또한 자기유사성을 지닌다.
세계의 많은 작용들과 본질을 공유하며,
그 중에는 '인간의 삶' 또한 포함된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한 사람이 태어나 사회 속에서 성숙해 가는 과정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차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채엽’이다.
차밭에 나가 찻잎을 따는 일.
그것 없이는 어떤 공정도 존재할 수 없다.
채엽은 차의 첫걸음이자,
겨울을 견딘 가능성이 봄의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약간의 압력에도 찢어질 듯 연약한 잎들이지만,
그 안에 농축된 푸르름은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찻잎을 온전히 채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 어린 잎은
작은 부주의에도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안은 채 이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운이 좋다면 흠으로 남고,
그렇지 않다면 끝내 부서지기도 한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여리디 여린 유년기의 성정은
배려와 관심 속에서만 온전한 자아로 자라난다.
그러나 그 시기에 생긴 작은 상처 하나가
훗날 한 사람을 동강내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에는
다정한 손길과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녹음의 씨앗이
정성스레 거두어질 때,
그로부터 비로소 한 인간을 빚는 여정이 시작된다.
채취된 잎들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고온에 노출된다.
가마솥에 볶거나, 증기로 쪄내는 등
열기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찻잎의 ‘푸른 빛’을 멈추는 것.
이를 ‘살청’이라 부른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푸름을 죽인다’는 뜻이다.
여린 잎을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로 던져 넣는 모습은
언뜻 잔혹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차는 제 향을 피우지 못한다.
충분히 익지 못한 잎은
불쾌한 잡미를 남기고,
고유한 향미의 발현을 방해한다.
보존성 또한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푸른 빛을 ‘잘’ 내려놓을수록
향은 오래 남는다.
본연의 풍미를 살리고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인간의 성장도 이와 닮아 있다.
아이는 언젠가
무조건적인 보호의 울타리를 떠나
낯선 세계로 내던져진다.
타인과 부대끼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규칙을 받아들이며,
불편함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완전한 타인과의 마찰 속에서
아이는 비로소 ‘개인’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아이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 열기를 통과해야만
다양한 결을 지닌 사람으로 익어간다.
푸름과 맞바꾼 성장은
쓴맛이 아니라 깊이가 된다.
충분히 익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향처럼,
그 사람만의 결도 이때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