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늦여름부터 한동안 글을 쓰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차라리 ‘내가 워낙 게으르고 의지박약 한 사람이라는 핑계라도 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 저는 지옥을 걷고 있었거든요.
금요일 오전 아빠에게 지금 집으로 내려올 수 있겠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오늘 왜?”
“그냥…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아… 나는 이제 안 좋은 소식을 듣겠구나’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뜬금없는 저녁 얘기와 어딘가 울먹이는 듯 한 아빠의 목소리
“누나랑 매형이랑 다 같이 다음 주에 먹는 거 아니었어? 누나가 다음 주에 저녁 먹자고 했잖아?”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되 물었어요.
한동안 말이 없던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어요.
“엄마가 오늘 내시경 했는데, 암 이래…”
저는 그때 어른이 된 지금도 아이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배가 아팠던 엄마는 이상함을 느끼고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엄마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때 의사는 아빠를 불러 엄마가 암이라는 말을 전했대요.
몇 달 새 기운이 없는 엄마가 그저 요새 무기력한 줄만 알았어요. 낮잠을 자주 자던 엄마가 그저 피곤한 줄만 알았고요.
한참 울던 저는, 지금 내려가겠다는 말을 아빠에게 전하고 옷을 챙기기 시작할 때 누나에게 전화가 왔어요
“엄마 어떡해” 그 이후로는 한동안의 울음소리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리고는 다음 주에 저녁 약속을 잡은 이유가 누나가 임신을 했다고, 엄마 아빠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고, 그 말을 전하려고 했대요.
참 기분이 이상했어요.
조카가 생긴 기쁨의 눈물도, 엄마가 아파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도 아니고 그냥 이런 상황이 원망스러워서 하염없이 누나와 눈물만 흘렸어요,
열차를 타고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겨우 어른이라는 체면으로 움켜 잡고 있을 때 “오고 있니?”라는 아빠의 문자를 받고는 문득 병원에서부터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하며 병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아빠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두 시간 뒤 저는 집에 도착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 봤지만, 힘 없이 누워있는 엄마를 보자마자 그건 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걸 눈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는 울음이 왈칵 터져 버렸어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던 엄마도 제가 일주일이나 빨리 집에 온 걸 보고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고 해요.
저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안 아팠어?”라는 말을 물으며 울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촉촉해진 눈가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애써 저를 위로하며 “고치면 돼… 괜찮아…”라는 말만 연이어 반복했어요.
그리고 아빠는 누나의 임신 소식도 엄마에게 들려주었고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다 더 울기 시작했어요. 기쁜 소식을 망쳐버려서 누나에게 미안하다며 말이에요.
그렇게 저녁에 모든 가족이 모여 대책을 세웠어요. 어느 병원에 어느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지, 일단 제일 빨리 되는 대로 가야 할지, 그리고 누나의 임신 축하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빨리 수술해 버리고 손주 볼 준비를 하자며 모두가 힘을 쥐어짜 내 봤어요
그 후로 몇 번의 희망을 꺾는 지옥 같은 절망들이 있었어요.
운 좋게 빨리 병원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엄마의 암은 대장암 4기까지 진행되어 있었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수술 전에는 수술에 대한 걱정, 수술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항암에 대한 걱정, 항암에 끝나갈 무렵에는 재발에 대한 걱정, 끝없는 걱정들을 먹고 자란 검은색의 지옥이라는 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엄마는 기특하게도 그 힘든 수술과 열두 번의 항암이라는 고통을 이겨냈어요.
열두 번의 항암이 끝날 때쯤이면 누나의 아기도 태어날 거고 ‘이제는 좋은 일만 있겠다 ‘ 싶은 희망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지옥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했어요.
하지만 누나의 아기가 태어난 순간 생명의 탄생이라는 거룩한 축복과 기쁨도 잠시,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어요.
희귀성 심장병.
왜 또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0만 명당 4~5명이라는 그 절망이 왜 또 우리에게 찾아왔을까?
우리 가족은 다시 눈물에 잠겨 허우적거렸어요.
가족들은 절망에 빠져 녹초가 되었고, 신이 있다면 이런 시련을 연이어 준 신을, 신이 없다면 이딴 것도 삶이라며 우리에게 쥐어 준 세상을 원망하고 있을 때
손바닥 두 개 만한 제 조카는 이름도 없이 출생 3일만에 따스한 부모의 품 대신 차가운 수술방에 들어가 5시간의 수술을 마쳤어요.
그리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누워 그 작은 몸으로 누구보다 강인하게 고통을 이겨내고 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언젠가 찾아올 희망이라는 순번을 위해 수 없이 많은 절망들은 꾸역꾸역 씹어 삼키며 버티고 있어요.
엄마도, 아이도 모두 이겨내고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산다는 건 이미 지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발 자국 앞에 있을지도 모를 천국을 찾아 다시 발을 내딛고 있어요. 비록 그 천국이 너무 짧아 금세 다시 새카만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라도, 짧은 천국의 기억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는,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지옥을 견디며 버텨갈 뿐이지만,
짧지만 우리를 버티게 해 줄 천국이라는 그 순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