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발선은 뒤에 그어졌다
엄마에게 당분간 공장 기숙사에 들어가서 같이 살자는 방법을 제시한 후 엄마와 나는 꽤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우선 엄마와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그만둬야 했다. 그 과정 중 엄마는 나의 앞길을 막는 것 같은 미안함 때문인지 대출이라는 다른 방법을 찾아봤지만 일용직 근무자로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엄마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던 나에게 대출은 3 금융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더 큰 비극은 만들고 싶지 않아 엄마의 방법을 만류했다.
그 사이 나도 근무하던 카페를 그만둬야 했다.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착한 사장님께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냥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돼서 그만둬야 한다고 죄송하다는 말만 사장님께 전했다.
사장님은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왠지 나의 상황을 모두 아는 듯한 얼굴로 나의 두 손을 잡으시고는 나를 쳐다보며 “언제든 힘내고, 언제든 놀러 와 알겠지?”라는 따스한 말만 남겨주었다.
이렇게 나와 엄마는 서울에서의 밥벌이를 모두 깨끗이 끝냈다. 더 이상의 미련도 남지 않게
그 이후 남은 건 오직 생산직 공장에 들어가는 일과 그 준비였다.
하지만 이런 준비를 나와 엄마만 한 건 아니다. 내 친구 영준. 영준도 함께 해주었다.
영준이 또한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였고 살고 있던 자취방을 부동산에 내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덤덤히 뱉어내는 영준을 보았을 때 나는 부끄럽고 미안해서 머리를 콱 박고 죽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영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어, 주영아 내가 얘기는 다 했고 그래도 얼굴 한번 보고 싶으시다고 시간 맞춰서 오라고 하시는데 내일 괜찮아?” 그렇게 영준과 나는 우리가 일 할 아니, 엄마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생산직 공장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긴장한 내게 영준은 면접이라고 했지만 형식적인 절차일 뿐 얼굴이나 직접 보고 대화나 나누자는 것이라고 했다. 영준과 함께 버스를 타고 40분가량 이동하여 도착한 생산직 공장은 차가운 회색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나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공장 사장님, 담당 반장님과 간단히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다행히 사장님과 작업 반장님은 우리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았다.
“젊은 친구들이 인상들이 좋네 믿음직스럽고. 안 그래요 반장님?”
“그러게요, 오랜만에 막내들 들어와서 사람들 아주 좋아하겠는데요?”
아직 나는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에 손발이 저릿하는 느낌까지 들고 있었지만 함께 간 영준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다음 주로 출근 날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둘 다 기숙사 신청한다고 했지?”
“네! 맞아요” 간절한 나의 대답을 영준이 대신해 주었다.
“아, 사장님 혹시 오늘 기숙사 좀 보고 갈 수 있을까요?” 나의 궁금증 역시 영준이 대신 풀어주었다.
“당연하지, 반장님 그럼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자 그럼 신참들 기상! 따라와”
우리는 반장님을 따라 사장실에서 나와 처음 보는 기계들이 줄 지어 있는 긴 공장을 거쳐 10분 정도 걸었다.
“둘이 친구라고?”
“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반장님은 걸어가며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나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너는 근데 자신감이 많이 없어 보인다? 친구랑 다르게”
“죄송합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노력하겠습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반장님은 호탕한 아저씨 웃음으로 껄껄 웃으시고는 나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우리는 기숙사 앞에 도착했고 반장님은 계단을 올라가며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지하에는 빨래하는데, 그 위에는 공용 식당 그리고 그 위부터가 기숙사야. 알겠지?”
“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데요?” 영준은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기숙사를 둘러보며 어떻게 해야 엄마와 들키지 않고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방은 2층 더 올라가 3층에 있었고 영준과 나는 바로 옆방이었다.
“바로 옆방이라고 맨날 붙어서 술 먹고 놀기만 해 봐 아주! 맨날 잔업이여”
영준과 바로 옆방이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만큼은 친구와 놀러 와서 우리가 묵을 숙소를 구경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다.
“비밀번호는 지금 0000이고 나중에 들어오면 그건 알아서들 바꾸고, 나머지 자잘한 규칙 같은 건 살다 보면 알게 될 거고, 나는 이제 가볼 테니까 구경하고 문 잘 닫고 가고! 다음 주에 다시 보자고?”
“네 감사합니다 반장님. 문 잘 닫고 갈게요! 다음 주에 봬요!” 영준이 대답했고 나는 영준의 끝인사에 맞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반장님이 공장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영준과 나의 방은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를 한 것처럼 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똑같았다.
“야 그래도 화장실이 각 방마다 하나씩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러냐?”
“그러게…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데? 적응되면 TV나 컴퓨터 같은 것 좀 갖다 놔도 될 거 같고…” 영준은 방에 나름 만족하고 있는 눈치였고, 나 또한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영준은 나의 어깨에 팔을 감싸고는 나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뭔가 꼭 놀러 온 거 같지 않냐? 같이 출퇴근하고 주말에도 옆방이니까 바로 같이 놀러 갈 수도 있고 그렇지?”
해맑은 영준의 모습이 진심인지 나를 위한 거짓말인지 100%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나를 위한 영준의 결단에 벅차게 고마웠다.
“진짜 고맙다 영준아”
“됐고, 방 사진 좀 찍어가서 어머니도 좀 보여드려”
“그래야겠다. 그 생각을 못 했네” 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방은 넓지 않았기 때문에 입구에서 찍은 한 장에도 방안의 모든 게 담겼지만 나는 궁금해할 엄마를 위해 구석구석 사진을 찍었다.
“다 찍었으면 이제 가자” 뒤에서 기다리던 영준은 버스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래 가자”
나는 이제 앞으로 엄마와 살게 될 그 좁은 방의 문을 닫으며 제발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버틸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영준과 나는 어둑어둑 떨어져 가는 노을처럼 사이좋게 곯아떨어졌고, 피곤했던 우리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다음 주부터 출근이라는 말과 함께 기숙사 사진을 엄마에게 보여줬다. 엄마는 나의 핸드폰을 받아 한 장 한 장 자세히 보고 있었다.
“그래도 화장실이 각 방마다 있어서 다행이야 엄마 그렇지?”
“그러게 말이야, 가는 데 얼마나 걸렸어? 어디라고 했지?”
“한 40분 정도? 경기도라니까 엄마 몇 번을 말해 진짜”
엄마는 핸드폰을 나에게 다시 돌려주며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만나 보니까 어떻든?”
“사장님도 반장님도 다들 엄청 좋으셔, 나랑 영준이도 되게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 같아”
엄마는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영준이?”라고 내뱉고는 이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아 맞다 영준이, 영준이도 같이 간다고 했지 참”
“응. 바로 옆방이야 잘 됐지? 혹시나 옆방 사람한테 들키면 어쩌나 했는데…”
“그러게, 잘 됐네…” 엄마의 사라지지 않는 가슴속 죄책감과 미안함이 다시 한번 느껴지자 나는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돌려 버렸다.
“엄마는 엄마 짐 알아서 챙겨 놔 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알겠어, 옷이랑 이불 같은 건 엄마가 챙겨 놓을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한번 빙 둘러보고는 가져가야 할 것과 버리고 갈 것들을 대충 훑었다. 딱히 챙겨 갈 것들은 없었지만 버린다고 생각하니 내심 아쉬움이 들었다.
이 낡은 집에 있던 초라한 가구들은 대형 폐기물 스티커가 붙여진 채 곧 이 낡은 집을 벗어날 것이고, 투박한 식기들과 이가 나간 컵들 또한 이 집을 벗어나 곧 쓰레기 차에 실릴 것이다.
집을 한번 둘러보고 창문 유리에 비친 내 모습과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엄마를 보니, 가구와 식기들은 드디어 이곳을 벗어나지만 엄마와 나는 이곳에서 쫓겨나는 처지라는 생각에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