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기적일지라도
조금씩 벌어지는 눈 틈 사이로 내 방 천장이 ‘보였다 안 보였다’ 천천히 반복하고 있다.
눈꺼풀이 완전히 열리고 난 후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오늘이 주말임을 안타까워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몇 번 지그시 눌렀다.
“하…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오늘은 엄마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고, 피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저 방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골치 아픈 문제는 자꾸 회피하려고만 하는 나의 타고난 천성 때문인지 나의 의지에 반해 몸뚱이는 자꾸 침대에 빨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회피형 몸뚱이를 겨우 일으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끼이이익’
엄마는 내가 나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차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지는 못한 채로 밥을 차리고 있었다.
“어… 일어났어?”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작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던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에 빠지려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응”이라는 차가운 한 단어만이 먼저 툭 내뱉어져 버렸다.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는 사이 몇 번의 달그락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그 소리는 곧이어 멈추고 “밥 먹자…”라는 힘없는 소리가 그 침묵을 메꿨다.
나는 식탁에 앉아있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의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 입에 넣고, 몇 번 씹어 삼키고는 더 이상 이 긴 고요함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 그럼 우리 이제 어떡해?”
“엄마가 알아보고 있어”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슬쩍 확인하고는 나 역시 엄마의 얼굴을 피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엄마만이라도 어디 당분간 살 곳 없을까? 친척들이나… 주변 지인들 중에…”
나는 엄마의 입에서 차라리 ‘엄마만? 그러면 있긴 있지’라는 말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엄마만 해결된다면 나는 영준이 말한 생산직 공장 기숙사에 지금 당장이라도 들어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없지… 그리고 너는 어떡하려고 엄마만 물어봐…?”
엄마는 의아함 인지, 본인이 나에게 짐이 된다고 느껴서 인지 뭔 지 모를 불안한 눈빛으로 이번에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어제 영준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었다. 이 말을 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잘 알고 있었지만, 엄마와 나에게 닥친 상황을 이겨내려면 엄마에게 모든 걸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어제 영준이가 자기 아는 분이 생산직 공장에 취업시켜 줄 수 있는데, 거기 들어가면 어떻겠냐고 나한테 물어봤어. 기숙사도 제공해 준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를 쳐다봤다.
“그래? 어디 있는 건데? 서울이야?”
“아니 경기도 어디래, 나도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직 몰라”
“너무 잘됐다. 그럼 일단 거기 들어가는 거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려 일단 한번 숨을 참은 후 침을 크게 한번 삼키고는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는…?”
나의 질문을 들은 엄마는 무언가를 크게 깨달은 듯 잠시동안 멍하니 나의 눈만 바라보다, 금세 눈에 조금씩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엄마는 나에게 짐이 된 본인을 원망하며 그 짐을 업고 있는 나를 안타까워했음이 확실하다. 수많은 고생이 담겨 있는 울퉁불퉁한 손가락으로 눈물을 투박하게 훔치고는 애써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주영아, 지금은 너만 생각해, 너만”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뭘 어떻게 할 건데 당분간 신세 질 곳도 없고, 친척들도 없는데”
“단기임대 같은 곳이라도 구하거나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엄마는 신경 쓰지 마”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였으면, 우리 이렇게까지 안 힘들었어 엄마, 알잖아”
나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엄마의 대답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요 며칠 가뭄이라도 온 것처럼 쩍쩍 갈라진 엄마에게 나의 취업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다린 단비라도 되는지 엄마의 얼굴이 촉촉해진 땅처럼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엄마는 조금 활기를 띈 목소리로 나에게 다시 물어봤다.
“근데 친구 누구라고?”
“영준이, 내가 친구가 영준이 밖에 더 있나”
“아 맞다 영준이, 영준이가 참 고맙네…”
“나 거기 들어간다 그러면 영준이도 지금 다니는 회사 그만두고 같이 들어갈 거래”
“영준이도? 왜 지금 다니는 회사가 별로래?”
역시 엄마도 놀란 듯했다. 하지만 차마 날 위해 같이 들어가 준다는 말을 지금 꺼낼 수는 없었다.
엄마의 앞에 앉아있는 아들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라는 걸 엄마는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뭐…”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디라고 했지? 서울 어디라고 했나?”
나는 고개를 들어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아까 내 얘기 잘 안 들었어? 경기도 어디라고 했잖아”
엄마는 겸연쩍은 듯 무말랭이 하나를 집어 오독오독 씹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 맞다 맞아… 엄마가 요새 깜빡깜빡하네, 나이가 들었나… 아무튼 들어간다고 할 거지 주영아?”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있기에 엄마는 더욱 나의 대답을 재촉하는 눈치였다.
“얼른 들어간다고 해.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나도 생각 좀 해보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
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더욱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마저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남은 밥을 먹었고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나는 겉 옷을 챙기고 집 앞으로 나가 영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엄마를 두고 갈 순 없을 것 같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고 영준이에게도 빨리 나의 생각을 전해야 했다.
“어… 여보세요?”
영준은 자다 깬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았다.
“어 난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 네가 말한 그 공장 말이야…”
핸드폰 너머 옅은 한숨 소리 후 잠깐의 정적이 깔렸다.
“왜?”
“엄마가 지낼 곳이 없어... 당장 보증금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엄마 혼자 길바닥에 나 앉게 할 순 없잖아 영준아…”
나의 대답을 들은 영준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몇 분 동안 대답이 없더니 기가 막힌 생각이 난 것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야, 조금 그렇긴 한데… 어차피 몇 달 정도 보증금 모으는 기간 동안만 어머니 모시고 회사 몰래 너 기숙사 방에서 같이 지내시면 안 되려나?”
터무니없는 말이었지만 그때 나는 그 마저도 희망으로 믿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까?”
“어차피 너희 어머니도 주거지가 없으시면 지금 건물 청소일도 그만두셔야 할 거고, 기숙사 사람들 다 출근하고 나면 그때 얼른 나오셔서 카페나 어디 나가 계시다가 저녁때 다시 들어오면 되지 않을까? 답답하지 않으시면 그냥 방에 있으셔도 되고”
영준의 말을 듣고 나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와 둘이 사이좋게 길바닥에 나 앉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알겠어,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볼게. 보증금 모을 때까지만…”
나의 대답에 영준은 왠지 신난 것 같은 말투였다.
“좋아, 좋아 한번 말씀드려 봐, 여쭤보고 다시 연락해 줘!”
나는 영준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가 거실에 앉아 있는 엄마의 앞에 상기된 얼굴로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았다.
엄마는 무슨 일인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나랑 같이 공장 기숙사로 들어가자. 우리 당장 그 방법 밖에 없어”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침묵에 나는 더욱 확신이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