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선택지
한심한 내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본 영준은 적잖이 당황했지만 가벼운 농담으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왜 울어? 그렇게 감동받은 거야?”
솔직한 마음으로 영준과 함께 생산직 공장으로 들어간다면 뭐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를 위해 멀쩡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같이 경기도 공장으로 들어가 달라는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나에게 그 정도의 염치는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회사 잘 다니고 있는데, 거길 왜 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양심에 못 이겨 툭 나왔다.
영준은 치킨 조각 하나를 들어 한 입 크게 베어 물고는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나도 적성도 안 맞고, 요새 그리고 평생 직장이 어디 있냐, 이것저것 해보는거지. 돈도 모을 수도 있고, 자취하니까 돈이 안 모여 돈이”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면 영준이가 공장에 혼자 들어가기 싫어, 친구인 나를 설득하려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나를 위한 영준의 거짓말은 진심 같이 들렸다.
하지만 평생 남의 눈치를 지독하게 보며 살아온 나는 단번에 그 말이 나를 위한 거짓임을 알아차렸다.
“됐어, 가더라도 나 혼자 가야지”
“혼자 가면 너 안 갈 거잖아. 내가 널 모르냐? 그리고 나 진짜 가도 괜찮다니까? 아니 가고 싶어”
못나고 이기적인 나는 영준의 배려를 덥석 물어버리고 싶었지만, 나의 마음에 걸리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생각 좀 해볼게”
“생각은 무슨 생각? 얼른 정해, 그래야 나도 공장에 말하지”
영준의 말에 나는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 했다.
“그래, 내 주제에 뭘 가리냐 다 좋지, 거기다가 너랑 같이 가면 솔직히 좋아, 아니 너랑 같이 가고 싶지, 근데 나는 거기서 일하고 기숙사에서 산다고 쳐도 그럼 엄마는…”
그렇다. 나에겐 하나남은 나의 가족이 있었다. 지금도 그 낡은 집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나의 엄마. 엄마를 두고는 갈 수 없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영준은 본인도 미처 그 부분은 생각 못했다는 표정으로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네… 어머니 어디 당분간만이라도 지내실 곳 없을까? 친척들 계실 거 아니야? 너 보증금만 다시 모으면 회사 근처로 방 구해서 모시고 살면 될 거 같은데”
나는 입으로 한숨을 내뱉으면 소리가 너무 크게 날까, 코로 깊은 숨을 내뱉고는 대답했다.
“아빠라는 인간 집 나가고 나서 친척들 연락 한통, 얼굴 한번 못 봤어. 그리고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아마 없을거야, 엄마는 나 밖에 없으니까”
맞다. 엄마는 나 밖에 없었다. 쥐뿔도 없는 내가 누군가의 전부라는 부담감이, 그리고 이런 내가 인생의 전부인 엄마의 삶을 생각하니 서글펐다. 별로 나가지도 않는 엄마의 무게 마저 버거워하는 내 스스로에게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영준은 한동안 골똘히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말이 없다가 나의 잔에 본인의 잔을 부딪히며 말을 꺼냈다.
“이런 얘기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단 너부터 생각하는건 어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작지만 하나라도 해결해 나가면 어떻게든 하나 씩 하나 씩 풀 수 있을거야.”
잔에 있는 술을 들이키고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다시 한 통 걸려와 있었고, 나는 엄마의 쓸쓸한 핸드폰에 문자를 하나 남겨두었다.
‘나 영준이랑 저녁 먹고 들어가.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먹어.’
문자를 보내고나니 엄마가 미웠지만 보고싶고, 원망스럽지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얼른 먹고 들어가자 어머니 아니야?”
영준의 나의 눈치를 보며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맞아, 저녁 먹고 들어간다고 말했어, 괜찮아”
“어머니 너무 미워하지 마, 어떤 선택을 하셨든 널 위한 선택이지 않았겠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영준과 나의 잔에 마지막 남은 술을 나눠 따랐다.
40분 정도 뒤 우리는 가게를 나왔고, 영준이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일단 될 수 있는 한 빨리 생각 정리하고 빨리 대답 줘. 너 길게 생각해서 좋았던 적 없어 알지?”
“그래 알지…”
“그리고 그 생각에 나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 그런 문제는 빼는거다, 알겠어?”
나는 그 말에는 말 대신 고개로 대답을 대신 했다.
“들어 간다. 조심히 들어가고 연락해”
그렇게 영준은 오늘 엄청난 이야기를 툭 던져 놓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영준의 뒷모습을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 카드를 찍고 맨 뒤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봤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에게 오늘 일어난 일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보증금과 이사 갈 집, 그리고 죄책감에 빠져 있을 엄마를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푹 떨구곤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생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영준이 나에게 한 제안을 골똘히 생각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엄마의 잔상이 보이는 듯 했다.
“엄마는 어떡하지…”
나에겐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 보였다. 일단 다시 보증금을 모을 때까지 엄마가 지낼 곳만 생긴다면, 영준에게는 평생 미안하겠지만, 그 동아줄을 잡아야 한다는 용기가 생겼다.
“삑”
나는 카드를 찍고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뒤 터벅터벅 집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에게 생산직 공장 얘기는 하지 말고 일단 지낼 곳이 어디 있겠냐는 것부터 물어봐야 했지만 집이 가까워 질수록, 오늘은 그냥 엄마가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어볼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나의 하루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냈을 엄마에게 지낼 곳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고단한 밤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만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지쳐 푹 잠들었기를…’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의 불은 켜져 있었고 집은 적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