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두 시간쯤 지났을까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힘없이 들렸다.
엄마를 보면 나는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하루 종일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그 이유, 어제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부터 물어야 할까, 아니면 이사 가는 걸 왜 말하지 않았냐고, 보증금은 왜 먼저 받은 거냐고 물어봐야 할까
나의 힘듦까지 짊어지고 있는 듯 힘없이 터벅터벅 거실로 들어오던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건들면 왈칵 울어버릴 아이 같은 눈으로, 차가운 나의 눈만 쳐다봤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질문의 우선순위를 내 머릿속에 나열하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걸 한 번에 깨달았지만, 내 입안 가득 차 있던 궁금증과 불안함은 나의 목구멍에부터 입안까지 가득 차, 나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내뱉어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엄마 우리 이사 가?”
“…..”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보던 그 초라한 시선을 낡고 누런 바닥 장판으로 피해버렸다.
“보증금까지 이미 빼서 받았다며? 우리 어디로 가는데?”
“이제 알아봐야지…”
말문이 막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알아본다고? 당장 2주 뒤야 엄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그런 건데?” “말이라도 미리 좀…”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바닥을 보며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
그때는 여름도 겨울도 아닌 선선한 가을이었지만, 이 좁은 월세방 안에는, 뜨거운 한여름이라는 인생에 녹초가 되어버린 엄마와, 그런 여름마저 얼려버릴 것처럼,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으로 엄마를 노려보고 있는 나.
상반된 두 계절만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차가운 냉기를 온몸으로 내뿜으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왜 그랬는지, 이제 어떡할 건지”
“이제 엄마랑 나도 각자 살자 이거야? 우리 가족이잖아, 왜 말을…”
엄마의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입술이 나에 추궁에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네 아빠가 왔다 갔어.”
‘아빠’ 오랜만에 엄마의 입에서 들어보는 말이었다. 도박에 알코올 중독자인 그 사람.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린 그 사람.
기분이 좋을 때도 듣기 싫은 그 사람이 하필이면 가장 최악의 순간일 때 다시 우리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사람이 왜? 언제?”
“어제… 엄마 일하는 데로 찾아왔었어.”
그 사람은 예전부터 가끔씩 엄마와 내 앞에 나타나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하곤 했다.
그 아빠라는 사람이 우릴 찾지 못하게 이사도 다녀보고, 연락처도 몇 번을 바꿔봤지만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은 귀신같이 우릴 찾아내곤 했다.
엄마와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사람은 우리를 ‘가족’이라는 미끼로 엄마와 나의 인생에 덫을 놓고 기다리는 파렴치한 사람이다.
우리는 또다시 그 덫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끊어내려 수없이 노력해도 끊어지지 않는 천륜이라는 그 덫에
“그래서 뭐라는데?”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뭘 도와줘? 돈?”
엄마는 겨우 힘을 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그 인간 말을 믿어?”
나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져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엄마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그래서 보증금 빼서 그 인간 갖다 준 건 아니지? 그건 아니지 엄마?”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푹 떨구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자 나는 확신했다.
모아둔 돈은커녕,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전 재산이었던 보증금이 없으니, 우리는 이제 길거리에 나 앉을 거라고. 나는 말없이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주영아”
엄마는 나의 팔을 붙잡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상태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해결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마. 그리고 네 아빠, 다시는 너랑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야.”
“아빠라고 부르지 마.”
그 인간에게는 전하지도 못한 모진 말을 엄마에게 대신 배설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제 벌겋게 부어오른 엄마의 목도 그 인간의 짓이었다.
나는 집을 나와 동네 이곳저곳을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 구석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와 엄마가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누구에게 위로받고 싶지도, 나를 위로해 줄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쓸데없이 저장된 전화번호부를 의미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영준에게 카톡이 왔다.
“어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장했다.
“집 근처, 좀 만나자.”
카톡의 1이 사라지자마자 영준이에게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집 근처? 뭐 하는데?”
“그냥 있어...”
“무슨 일 있어?”
나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번에 갔던 그 치킨집 알지? 지금 바로 거기로 와”
영준이는 나에게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듣지 않아도 모두 아는 듯했다.
나는 일어나 엉덩이를 힘없이 툭툭 털고는 영준이가 말한 치킨집을 향해 어두운 골목을 벗어났다. 버스를 타고 5 정류장 뒤에 내려, 조금 걷다 보니 영준이가 말한 치킨집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네,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돼요”
영준이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고는, 조금은 어색한 미소로 나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일행 오면 시켜도 될까요?”
“네, 그럼요 주문하실 때 다시 불러주세요”
영준에게 도착했다고 알려주려 하는 찰나에 영준이 내 앞에 나타나 앉았다.
“아직 뭐 안 시켰지?”
“응, 오면 시키려고”
영준은 메뉴판을 한번 보더니, 나를 슬쩍 보면 물었다.
“저녁 안 먹었지?”
나는 말없이 힘없는 고개를 위아래로 겨우 끄덕였다.
영준은 바로 종업원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 후라이드 하나랑 김치 어묵탕 하나 주세요.”
“네, 후라이드는 순살로 드릴까요?”
“아뇨 뼈 있는 걸로 주세요, 소주랑 맥주도 하나씩 주세요.”
곧이어 종업원은 팝콘과 술을 먼저 가져다주었다. 영준은 바로 술을 따 나에게 따라 주었다.
“무슨 일인데?”
영준이 따라 준 술잔을 들고 영준의 잔에 가볍게 부딪힌 후 한입에 벌컥 들이킨 후 말했다.
“나 이사 가”
영준도 따라서 한입에 마신 후 나의 빈 잔을 따라주며 물었다.
“어디로?”
차오르는 술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했다,
“몰라 나도”
“뭐야, 어디로 이사 가는지도 모르는데 이사를 가?”
나의 가정사를 모두 알고 있는 영준에게 온갖 구질구질한 상황을 모두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아빠가 엄마한테 찾아왔었대. 엄마는 지금 집 보증금 빼서 그 인간 줬고”
영준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작게 숨을 내뱉으며 뒤로 기대앉았다.
“다른 집 구할 보증금은 있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영준이 따라준 두 번째 잔의 술을 비워버렸다.
영준이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고, 영준이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영준의 눈을 피했다. 무슨 이유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때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영준은 나의 앞접시에 어묵탕을 덜어주며 입을 뗐다.
“너 나 아는 생산직 업체 있는데, 거기 한번 들어가 볼래? 너 들어간다고 하면 내가 한번 잘 말해 보고.”
“생산직? 뭐 만드는 곳인데? 공장 같은 건가?”
“어, 자동차 어디 들어가는 부품 만들어서 납품하는 공장인데 꽤 커. 경기도 어디라고 했는데, 기숙사도 제공해 주고.”
“그런 거 경력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
내 얘기를 들은 영준은 한 동안 말이 없다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좀 정신 차려 새끼야, 너 지금 경력이 문제가 아니고 일할 용기가 없거나, 그냥 하기 싫은 거 아니냐? 지금 네 상황을 생각하라고 좀”
울컥했다. 영준의 말에 서운해서 울컥한 건 아니다. 그냥 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기에 정곡을 찔려 울컥했다.
“그래, 솔직히 나… 용기가 없다. 그냥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열심히 살 용기가 없어.”
나의 말을 들은 영준은 말없이 빈 잔에 술을 채우며 말없는 나를 계속 쳐다봤다.
“주영아, 나도 같이 간다고 하면, 너 용기 내서 해볼 수 있겠냐?”
영준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들어 영준을 쳐다봤다. 나의 모자란 용기를 자신을 희생해 채워주려는 그 녀석의 눈을 보자, 보잘것 없이 겁만 많은 나의 눈에 눈물이 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