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은 복리다
“… 주세요.”
“하나.. 달라고요…”
“저기요?!”
“아..! 네! 죄송합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달라고요.”
“네 4000원입니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불편한 마음으로 그 긴 밤을 보냈다. 어딘가 미심쩍은 엄마의 행동과 빨갛게 부어오른 엄마의 목.
밤새 온갖 상상은 다 해본 것 같다. 아침에는 차마 내 불안감의 원인이 되어버린 엄마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엄마를 피해 나오려 노력했지만, 엄마의 노력이 나보다 더 짙었나 보다.
오늘 아침 엄마를 보지 못한 걸 보니…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주영이 오늘 뭔가 멍해 보이네?, 무슨 일 있어?”
“아.. 사장님… 아니요!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너는 참 별게 다 죄송하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네, 그런 건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니다. 근데 뭔 지 모를 불안한 생각은 내 머릿속에 질서 없이 빼곡하게 자꾸만 쌓아진다.
꼭 테트리스라는 게임에서 삐죽삐죽한 블록만 연달아 나오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법도 한데, 그 와중에 가장 덜 불안한 생각은 밀려나고 더 큰 불안들로만 쌓여가고 있다.
“피크 타임도 끝났고, 주영아 나 마트 좀 갔다 올게. 혼자 볼 수 있지?”
“네 다녀오세요 사장님”
“금방 다녀올게, 가게 좀 부탁해!” 앞치마를 벗고 사장님은 차 키와 지갑을 챙겨 가게를 나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적막한 카페 안, 마침 이곳에는 나 밖에 없다.
나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분명히 뭔가 있다’
어제 엄마는 분명히 다른 날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이상함을 느낀 부분은
평상시 엄마가 일이 힘들었을 때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 또 하나는 조금 빨갛게 부어올랐던 엄마의 목 주변.
넘어질 때 난간에 쓸린 거라고 엄마가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누구보다 믿고 싶으면서도 믿지 않고 있다.
나의 불안은 항상 더 끔찍한 불안에게 잡아 먹히고 있었다.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엄마와 불러도 대답이 없던 그 시간,
화장실에서 엄마가 스스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대체 왜? 어디가 아픈 건가? 그래 보이진 않았는데, 병원에 간다고 했던 적도 없고..’
‘돈 문제? 아니, 애초에 우리 집 상황이 더 나빠질 수가 있는 건가?’
‘그냥… 그냥… 내 과대망상인가… 진짜 그날따라 유독 일이 힘들었고, 일을 하다 다친 게 맞을 수도 있잖아…’
“근데 그게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나는 나조차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찝찝한 자기 합리화는 항상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없다는 걸,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엄마에겐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래, 오늘 끝나고 집에 가서 물어보자. 뭐가 됐든 지금 불안한 것보다는 낫겠지.”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내심 두려웠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만 들을 것 같은 기분, 겪고 싶지 않은 상황들만 나에게 찾아올 것 같은 확신이 들고 있었다.
사장님이 나간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환한 햇빛을 등뒤로 맞으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장님을 본 순간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마치 지금의 불안에서 나를 구원해 줄 신이라도 본 것 마냥 큰 용기가 생겼다.
“저기 사장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네가 웬일이야, 당연하지, 왜 가게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사장님은 씩 웃으며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나에게 다가왔다.
“뭔데 그래? 뭐든 물어봐 얼른”
“만약에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진짜 궁금한 게 있어서 그걸 무조건 알아야만 숨 쉴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들면요…”
“뭐야, 뭔데 주영이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아뇨! 그건 아니고, 근데 꼭 알아야 하지만 그 진실을 알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그럼 그 사실을 알아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
“어우 답답해! 그러니까 결국 꼭 물어봐서 알고 싶긴 한데, 네가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봐 그게 무섭다는 거야?, 그래서 물어봐야 하나 참아야 하나 고민인 거고?”
“네 맞아요.”
“주영아 있잖아”
사장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쳐다봤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건데 내가 감당할 수 있냐 없냐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더라.”
“그럼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해, 누가 그러잖아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는, 근데도 그냥 다 지나가는 일이 되어버리는 건
감당하고 이겨낸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버텨낸 거야, 온몸으로, 벅차게, 내 몸에, 내 마음에 흉터가 여기저기 남아서 몸도 마음도 너덜거리지만 그래도 버텨낸 거야”
“근데 그걸 감당해 냈다고 할 수 있을까? 감당했다기보다 그냥 그렇게 온몸으로 맞아버린 거야,
내가 감당하겠다, 포기하겠다 정하고 말고 가 아니고 시련은 그냥 그렇게 맞아버리는 것 같아.
온몸으로 맞서서 아프게 말이야”
이 말을 하고 있는 사장님의 눈동자가 회색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너는 하나는 정할 수 있겠지”
사장님은 고개를 들고 다시 생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시련을 알고 맞느냐, 아니면 모르고 맞느냐, 그거 하나만큼은 그래도 네가 정할 수 있으니까 무슨 말인 지 알지?”
나는 정확히 사장님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당장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들은 것 같았다.
“네, 물어봐야겠네요. 모르고 맞긴 싫거든요..”
“그래, 내가 다 속이 시원하네, 근데 명심해 어떤 답이 나오더라도 다 맞고 버텨낼 수 있다는 거.”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장님과의 대화 이후 사장님은 나에게 별 다른 말을 걸지 않으셨다. 안 그래도 복잡해하던 나의 머릿속을 더 이상 휘젓고 싶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저 그럼 이제 들어가 볼게요.”
“응! 고생 많았고 남은 하루도 힘내!”
무작정 힘내라는 말보다 남은 하루도 힘내라는 말이 더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남은 하루만 힘내서 잘 견뎌내면 그다음 날도 힘내서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나는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고민하다, 걸어가는 사이 다시 불안감에 찌들어 있는 내가 될까 봐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눈앞 저 멀리 집이 보이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집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누군가의 존재는 뚜렷해지고 있었고, 그 존재가 집주인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에 어딘가 모르게 나는 안도했다.
“안녕하세요”
“어? 주영이구나? 아르바이트 갔다 오는 길이야?”
“네, 아주머니 근데 저희 집 재계약 말인데요...”
“너희 엄마한테 다 들었어, 아줌마가 다 아쉽네 진짜”
“네? 뭐가요..?”
“이사 간다면서, 월세도 한번 밀린 적 없고 너랑 너희 엄마 다 좋은 사람들이라 이번에도 월세 안 올리고 다시 계약하려고 했는데, 이사 가야 한다니까 아줌마도 엄청 아쉽고 속상하고 그렇네…”
“저희 엄마가 그랬다고요?”
“뭐야? 엄마한테 못 들었어? 오늘 아침에 그렇게 말하면서 2주 뒤까지 다 정리해서 뺀다고 보증금만 먼저 좀 돌려줄 수 있냐고 그러길래, 내가 너희 모자 1,2년 본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줬지.”
당황스럽다. 집 이사야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쳐도 나에게 엄마가 한마디도 안 해줬다는 게 너무 날 당황스럽게 했다.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맞아요, 저도 참 아쉽네요, 항상 잘 챙겨 주셨었는데”
“내가 뭐 해준 게 있다고, 어디 가든 잘 살고 가끔 한 번씩 놀러 와, 알겠지?”
“네, 가기 전에 다시 인사 한번 드리러 올게요.”
아주머니를 뒤로 한 채 나는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찾고 있었지만 내 입에선 엄마를 부르는 소리 하나 없이 그저 뚜벅뚜벅 걸어,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오래된 나무 문에 달려있는 오래된 경첩이 내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신경 쓰였다.
엄마는 없었다.
나는 문을 닫고 거실 낡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을 보니 엄마는 일이 끝나고 집에 있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어야 할 시간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저 빌어먹을 현관문을 열리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멍청한 얼굴을 하고 머리를 감싸 쥔 멍청한 자세로 엄마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