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특송] 까다로운 고객을 위한 맞춤 배송
저는 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배달하는 일을 즐깁니다.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면서도 무모했던 배송이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바로 '전설적인 게임단'과 '럭셔리 카 브랜드'라는, 어찌 보면 평행선 같은 두 세계를 잇는 팬미팅 대본이었습니다.
“이 일 한번 맡아볼래요?”
“오~ 재밌겠는데요!”
"이런 대본 써본 적 있어요?"
"아니요? 근데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막상 하얀 모니터 앞에 앉으니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게임이라는 언어도, 팬미팅이라는 특유의 문화적 문법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었구나.
대본은커녕 단어 하나조차 나아가지 못하는 그 막막한 고립의 시간 속에서, 과연 저는 어떤 길을 찾아내 이 미션을 ‘배송 완료’했을까요?
첫 번째 고비 '게임' - 해결은 '덕후'로!
제가 맡은 팀은 말 그대로 이 바닥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습니다. 세계 대회를 제패한, 그야말로 신계에 있는 팀이었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제게 그 게임은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이 정신없이 싸우는 무언가일 뿐이었습니다. 이 문제해결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해결했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그 팀의 오랜 찐팬이자, 특히 ‘신’이라 불리는 레전드 선수를 숭배하는 ‘덕후’였습니다. 그날부터 특별 과외가 시작됐고, 저는 물음표 살인마가 됐습니다.
"이 선수가 정글이야? 게임 스타일은 어때?”
“이 원딜러의 공격 스타일을 차로 비유하면 어떤 느낌일까?”
남편이 쏟아내는 팬심 가득한 데이터들을 수집하며, 저는 럭셔리 차량의 품격과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매칭하는 아이디어를 하나씩 조립해 나갔습니다.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는 강인함, 혹은 우아하면서도 압도적인 퍼포먼스 같은 키워드들이 대본 위에 착착 안착하기 시작했죠.
두 번째 고비 '팬미팅' - 해결은 '선배'로!
방송 원고야 10년을 썼으니 글 구성에 도가 텄지만,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팬미팅’은 완전히 다른 장르였습니다. 심지어 팬미팅을 가본 경험도 없으니 구성은 첩첩산중이었죠. 소개를 받아 팬미팅을 해본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궁금한 것들을 물으며 팬들이 주인공이 되어 즐기는 ‘축제’로 구성하는 법을 배웠죠. 덕분에 선수들의 취향을 엿보는 ‘밸런스 게임’이나, 팬들이 직접 선수와 어울리는 차를 골라주는 ‘더 퍼펙트 매치’ 같은 코너들이 생동감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 화려한 조명 아래 선수들이 등장하고, 제가 밤새 고민하며 쓴 멘트들이 현장의 함성과 섞였습니다. 압권은 행사 막바지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암전과 함께 시작된 깜짝 생일 파티. 팀의 중심을 잡아주던 선수를 위해 팬들이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 작가로서 느끼는 희열은 정말이지 '이 맛에 이 일 하지!'란 말이 절로 나왔죠ㅎㅎ
누군가의 일 년을 책임지는 입찰 제안서가 묵직한 삶의 무게라면, 이런 현장의 대본은 그 삶을 잠시나마 환하게 밝히는 불꽃놀이 같았습니다.
작가의 일이란 결국, 내가 전혀 모르는 타인의 세계에 조심스레 발을 들이고, 그곳의 언어를 배워 우리 모두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배달하지 못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그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누군가의 손을 잡을 용기,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할 뿐이죠. 정말이지 모르는 건 배우고, 부족한 건 주변의 손을 잡으며 달렸기에 가능했던 ‘특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