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매일 명상

살아내기의 의무

AI 시대 작가의 시간

by 이기담

생각마저도 AI가 대신해주는 AI 세상을 앞에 두고 생각을 오래 한다.

인공지능 AI가, 생명 없는 피지컬AI가 인간의 육체마저 대신해주는 세상에서 이제 인간의 삶은 어떠해야 하나, 작가로서 내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글도 인공지능 AI가 잘 써주는데 작가로서의 나의 삶은 어떠해야 하나.

AI는 이미 훌륭한 문장을 쓴다. 때로는 내가 쓴 것보다 더 매끄럽고 논리적인 글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전히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손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눌러가며 문장을 만들어내는 이 느린 작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박경리 선생의 '바느질' 시를 읽다가 내가 했던 고민의 해답을 다시 확인한다.


천리향과 까망이가 살아내는 시간


생명은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아주 오래전, 스스로 얻은 해답이기도 했던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기'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의 의무라는 것. 고양이는 고양이로서의 시간을 살아내야 하고, 닭은 닭으로서의 시간을 살아내야 하고, 천리향은 식물로서의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저마다 인연이 되어 태어난 생명들이 갖는 조건이다.

베란다의 천리향을 본다. 천리향은 생명으로서 부여받은 방식대로 초봄에 터트릴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다. 식물은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자신의 시간을 살아낸다. 물을 주면 받아들이고, 햇빛이 오면 잎을 펼치고, 추위가 오면 잎을 떨구고, 봄이 오면 다시 피어난다. 그것이 식물로 태어난 존재가 해야 할 일이다. 천리향은 장미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장미보다 덜 아름답다고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천리향으로서의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낸다.


도서관 뒤편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 까망이도 고양이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까망이는 고양이의 방식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울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잠들고, 고양이의 방식으로 사람과 소통한다. 그것이 고양이로 태어난 존재가 해야 할 전부이다.


한 땀 한 땀 기워 나가기


그렇다면 인간은? 작가는?

AI가 글을 쓸 수 있다고 해서, AI가 생각을 대신해준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내야 할 시간의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의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감각으로,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함으로 이 세계를 경험하고 살아내야 한다.


인간의 역사를 생각한다. 기원전 만 년 전에 일어났던 농업혁명을 생각하고, 기원전 2세기의 철기 도입을 생각하고 18세기의 산업혁명을 생각한다. 이제 또다른 인류 대변혁의 시기가 분명한 AI 시대가 시작됐다. 나는 이 거대한 물결에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AI 사용은 기존의 작가로서 자리한 윤리적 의무감에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찌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챗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박경리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마로니에북스, 2008년,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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