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 살에 해외취업을 하게 된 이유
그렇게 첫 승선실습을 마치고 일단 마음껏 놀았다.
고작 6개월 떠나있었을뿐인데 세상에는 재밌는게 너무 많았다.
가족/친구들부터 음식, 문화생활 등등 매일매일이 도파민 천국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3항사로서의 승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회사 분위기가 좋지가 않다. 나는 당연히 같은 회사에서 연계를 할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갓 스물이 된 나는 내가 직접 회사를 찾아가야하는지, 그냥 기다리면 되는지, 아무런 감도 경험도 없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중,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하고 해양대생들이 우수수수 승선 자리를 잃기 시작하며 하나둘 해사고 선사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해사고생이면서 여자인 나는 가장 후순위가 되어버렸다.
사실 그 때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선사를 찾아 헤맨다거나 승선 기회를 잡았으면 배를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당시는 그 정도로 진심으로 배를 타고 싶었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선하고 약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해사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연락이 오셨다.
"너 혹시 싱가폴에서 일해볼 생각 있니? 영어를 잘하는 애들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너였어."
처음에는 선사 취업인줄 알고 너무 기뻤다. 그런데 알고보니 물류회사라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해운 쪽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물류회사라는 소리에 조금은 주춤했다. 그렇게 일단 고민을 해본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물류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내 기준에서는 일반적인 곳이었기에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했다.
"너 만약에 관심 없으면 OO이한테 물어본다?"
그 말이 결국 나를 싱가폴로 가게 한 결정적인 말이었다.
참 어렸다. 그 결정은 온전히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저 그 친구가 싱가폴에서 일하게 된다면 내가 느끼게 될 질투, 부러움, 후회 등의 감정 때문이었다. 스무살의 나는 모든 관심과 부러움의 대상이 나였으면 하는 그런 욕심많은 아이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어떤 본인만의 포부와 목표를 가지고 해외취업에 도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도 이런 멘트를 외쳤다.
"이런거 언제 해보겠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항상 이래왔다. 이런거 언제 해보겠어!? 해보고 싶으면 하는거지!
선생님은 그 회사와 나를 연결만 시켜주었다. 알고보니 글로벌 TOP3 대기업이었다. 그때는 대기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중요한지 몰랐던터라 어떤 회사인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일단 이 2가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1. 해외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
2.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싶다.
정식으로 이력서도 제출하고, 3번의 면접도 진행했다. 돈을 들여서 해외취업 컨설팅 학원에 등록했다.
선생님의 영향이 있었는지, 외국회사이니만큼 정말 공정하게 검토를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스스로 떳떳할 수 있게 정말 최선을 다했고, 3달간 치열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취업 도전기는 성공했고 나의 첫 해외살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