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고등학생, 컨테이너선과 함께 항해를 시작하다.
그렇게 19살되던 해의 6월,
나는 운이 좋게 컨테이너 선사에 취업하여 회사의 최연소 실습항해사로 항해를 시작했다.
선생님, 선배님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배'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하는게 정말 쉽지 않다고.
그리고 사람들도 거칠기 때문에 여자로서 쉽지만은 않을거라고 주의를 주셨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를 탔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에도 배에서의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무난무난했던 19살 인생에 처음으로 쓴맛을 맛보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승선 첫 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19살의 여학생이 하면 뭘 얼마나 할 수 있다고, 온 배를 돌아다니면서 '제가 하겠습니다.', '저 힘 쎕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이 따로 없었다. 사관분들은 그런 내가 당돌한지 너털웃음을 짓곤 하셨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선장님께 잘 보여야함을 느끼고, 명찰에 줄을 꿰고 있는 선장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제가 돕겠다고 했다. 선장님은 니가 할 줄 알긴 뭘 알아~ 껄껄 웃으시면서 온화한 미소를 띄셨다.
그렇게 의욕 만땅 실항사는 승선 첫 날부터 완전히 방전되어버렸다.
그래도 소소한 일일지라도 배에 나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뿌듯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6개월동안 한국 - 베트남 - 태국을 돌아다니며 선박 항해를 했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걸 실제로 보고 배우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워키토키(무전기)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이 제법 멋져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구에 들어갈때마다 거기 일하시는 분들 앞에서 괜히 멋지게 똥폼을 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뿌듯했던 건, 여자들이 많이 없는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때의 도파민을 맛본 나는 계속해서 '범상치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배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실항사니까 크게 나에게 주어지는 책임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욕 먹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혼 나는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었다.
실수를 해서 크게 혼나기도 하고, 억울하게 혼나기도 하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혼나기도 하고.
하루는 너무 억울해서 방에 벽을 주먹으로 쾅 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혼자 펑펑 울었다.
그때부터 이 세상에 대해 조금은 깨달았던 것 같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하고 잘해도, 결국 내 마음대로 되는건 하나도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깨달아버렸다. 그래도 이 깨달음은 향후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배는 위계질서가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배 자체가 위험한 공간이다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선장님의 오더 하에 움직여야한다. 대부분 선장님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 가끔 기관장님은 선장님과 다투시기도 하지만, 결국 배의 최고 책임자는 선장이다. 그래서 다들 뒤에서 툴툴거리기만 할뿐 선장님의 오더를 거스를수는 없다.
나는 어째서인지 이런 위계질서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막내인 나는 윗사람이 하라는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냥 까라면 까면 된다. 그게 속편하다. 학교에서 열심히 훈련된 덕분인지 이런 구조는 나에게 잘 맞았고, 이런 성향은 배에서는 잘 맞겠지만 오히려 사기업에 들어가서는 독이 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껏 내가 굉장히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자하는건 명확하고 화끈하게 추진한다. 다만, 어떤 조직 내로 들어가는 순간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그 안에서는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변화시킬 의지도 의욕도 없다. 여러 조직을 겪어본 뒤 깨달은 사실이다.
맞고 틀리고는 없다. 단지 내가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온 것이고, 이제 알았으니 내 성향에 맞는 일을 하면 되는거다.
아무튼 그렇게, 호기로웠던 나의 첫 바다에서의 생활은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을 얻은채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