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내 10대는 정말 평범했다. 딱 중학교까지만.
성적은 나름 중상위권, 친구관계도 날라리도 아닌 그렇다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딱 중간. 성격도 이정도면 좋은 편. 항상 선생님들의 칭찬을 들었고, K-장녀로서 부모님의 기대에도 항상 부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싫은 소리 들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중학교 3학년즈음 교실 게시판에 해사고등학교 모집공고가 붙었다.
그저 평범했던 여학생이 갑자기 해사고등학교 진학을 꿈꾸게 된다. 성적도 괜찮고 나름 영어도 잘했던터라 외국어고등학교 진학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친구가 마이스터고등학교를, 그것도 배를 타는 해사고등학교를 가겠단다.
* 마이스터고등학교란, 선취업 후진학하는 학교로 고등학교 졸업 후 3년동안 일을 해야만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마이스터고등학교가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제도기도 했고, 성적도 보고 면접도 봐야했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여학생이었고, 여학생 1기에다가 10% 밖에 뽑지 않기 때문에 꽤나 상위권의 성적을 요했다. (실제로 나의 합격 내신은 7%였다)
우리나라는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를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며 부모님이며 모두 나를 뜯어말리셨다. 특히나 여자가 배를 타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일인데다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자가 배를 타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어떤 심정으로 나를 말리셨는지 알 것 같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였고 오히려 외고까지 바라보던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똥고집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 '반항'을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왜 갑자기 해사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을까?
멋있는 제복도, 배를 타는 것도 아닌,
이라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뭐 저런 이유가 다 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16살의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의 나와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선택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 선택은 항상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다. 역시 본인이 가진 사주팔자가 있긴한가보다.
결국 나는 열심히 준비했고 마침내 해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합격 당시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게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위해 열심히 준비해서 결국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빨리 성취 경험이 생겼고, 어쩌면 그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성취도파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들어간 학교 생활은 정말 재밌었다.
항해사를 양성하는 새롭고 특수한 환경, 제복을 입고 다니는 멋, 규율이 딱딱 정해져있는 것도 좋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배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재밌었다. 나는 특히 항해과여서 선박 운항을 배웠는데 그저 공부도 승선실습도 재밌었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은 멀미로 힘들어할때 나는 멀미를 하나도 안하고 오히려 친구들을 케어해줘서 나이팅게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학교에 있는 내내, 나는 당연히 배를 탈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첫 여학생 기수이기 때문에 선사를 찾는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운이 좋게도 컨테이너선박, 그것도 신조선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실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항해사라는 세계에 입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