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부터 분주하다. TA 하는 수업 간식을 챙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못 하는 관계로 남편 차를 얻어 타고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알람은 5시 반에 맞췄지만, 결국은 2번의 snooze를 누르고 2분이 지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학교 근처 베이글 집이 7시에 문을 연다. 베이글을 이것저것 골라 15개 주문한 다음, '베이글 다 반으로 잘라 달라고 말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바로 영어로 말했다.
"Please cut them."
"Umm, Slice them?"
"Yes! Slice them!"
나의 cut을 slice로 바꿔 말하는 매장 직원을 보면서, 내가 뭔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cut이나 slice나 다 같은 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눈치껏 알아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굳이 slice라고 해야 더 자연스러움을 느낀 매장 직원의 입장에서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매장 직원이 느낀 감정은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한다. 한국에 사는 어떤 외국인이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며 친구 버스비까지 같이 내는 상황이었다. 외국인은 "두 개요!"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물론 문맥을 통해 외국인이 '두 명'이요라고 의미했다는 것을 한국 원어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 원어민은 사람을 셀 때 두 명이라고 하지 두 개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말 '자르다'는 다양한 상황에서 마구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영어 cut도 비슷하다. 하지만 영어는 눈치가 고도로 발달한 한국말과 달리 정확하고 구체적인 단어를 문맥에 맞게 써줘야 한다. 문맥에 맞춰서 애매모호한 단어를 쓰는 것을 싫어한다.
보통 베이글 집에서 베이글을 썰어달라고 하면 베이글을 단면으로 넓게 잘라준다. 이게 slice다. 베이글을 cut 해 달라고 한다고 굳이 깍둑이 썰듯 썰어주지는 않는다.
cut: 날이 있는 도구를 이용해 두 개나 두 개 이상의 부분으로 나눌 목적으로 베다 (째다)
slice: 상대적으로 넓고 얇은 조각으로 나누다, 베다;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완전히 베다.
몇 개월 전 시어머니 집에서 베이글과 관련된 '말실수'를 한 적이 생각났다. 아침 식사 시간에 찾아뵌 거라 도착하자마자 시어머니는 뭘 좀 먹을 거냐고 물었다. 베이글도 있고 머핀도 있으니 먹고 싶은 거 골라서 먹으라고 하셨다.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이 맛있어 보이길래 베이글 하나를 들었다.
베이글을 잘라 구워 먹고 싶었다.
나: I want to cut it. How can I cut it?
시어머니: Do you want to slice your bagel?
시어머니는 그러면서 베이글을 슬라이스 하는 슬라이서를 건네주셨다. 당시엔 내가 선택한 단어 cut을 slice로 바꿔 말하는 시어머니로 인해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것 같은 창피함을 느꼈다. 결국, 창피하다는 생각 때문에 시어머니는 '왜 cut이라고 말하지 않고 slice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 조차 없었다. 결국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됐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며 저지르는 실수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게 된다. 영어를 배우면서 하게 되는 실수는 가슴이 아닌 '머리'로 받아들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문화와 정서도 같이 배우는 진정한 언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요즘 한국에서 거의 한국어가 된 '슬라이스' 치즈가 생각이 난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slice는 치즈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됐지만, 영어는 slice가 동사나 명사(Cheese slices)로만 쓰인다. 물론 sliced로 과거분사로 만들어 형용사가 될 수는 있다 (sliced cheese).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보통 단어 끝에 나오는 s 나 ed를 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슬라이스드" 치즈 하지 않고 그냥 "슬라이스"치즈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어는 이것을 활용해 단어의 문법적 특성을 설명해 주기에 중요하다. iced tea(아이스드 티)가 문법적으로 맞고 ice tea(아이스 티)는 틀린 것과 똑같다.
한국에서 한국말처럼 쓰이는 영어표현도 깊게 생각해 보면 좋은 영어공부 자료다. 생각 없이 한국화 된 영어를 영어처럼 사용하다간 실수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