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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a Nov 13. 2024

영어를 배우며 다시 한국어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

오래간만에 남편과 함께 집 근처 한인마트를 찾았다. 물김치에 필요한 배추와 각종 양념을 장바구니에 넣고 계산을 위해 줄을 섰다. 내 앞에서 3명이나 대기 중이다. 요새 k-pop과 k-food의 영향으로 한인마트도 덩달아 매출이 오르는 것 같다. 맨 앞에서 계산하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 여자였다. 마트 주인에게 영수증을 받으며, "감사합니다"라며 애교 섞인 말이 내 귀에 유난히도 박혔다. 


계산을 마친 한국인은 마트를 나가지 않고 계산줄에 서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자의 영어목소리를 들으며 처음에는 "어, 영어 잘하네?"라는 나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며 마음을 가다듬고 여자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런데 무엇이 이상한지 알 수가 없다.


계산을 마치고 남편 차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물었다.

"아까 마트에서 한국여자 목소리 들은 거 기억나?"

"응"

"그 여자 목소리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완전 남자 목소리였어."


그렇다. 완전 저음의 남성 목소리였기에 여자의 영어가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다. 애교 셖인 한국어 목소리와 180도 다른 소리였다.

"내 영어목소리도 남자 목소리처럼 들려?"

"음.... 쪼금. 하지만 네가 한국말할 때는 완전 여자 같아."


번갯불처럼 남편을 한번 쪼아본 후,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 되돌아가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그럼, 어떻게 하면 영어로 말할 때 여자처럼 말할 수 있지?"

"네가 한국말할 때 어떻게 말하는지 잘 듣고 그것처럼 따라 해 봐."


한국영어학습법은 일본에서 건너왔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영어학습법을 독일사람들에게 전수받았다. 독일어는 언어자체가 중성목소리를 갖는다. 그러나 일본어와 한국어는 남성과 여성 목소리가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은 영어가 갖는 여성적인 소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남자 목소리로만 배운다.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영어는 독일어와 달리 중성목소리를 가지지 않는다. 여성은 특유한 여성의 목소리가 있고, 남성은 남성 특유의 목소리가 있다.


영어를 배우면서 다시 한국어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나의 자연스러운 한국어 목소리가 영어를 말하면서도 나와야 한다. 한국식 억양을 지워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에 우린 우리 정체성을 알려주는 고유한 목소리조차 죽였다. 한국식 억양보다 더 이상한 것은 여자가 남자 목소리로, 남자가 여자 목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의 성정체성에 따라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괜한 오해를 쉽게 살 수도 있다. 


영어공부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자란 내 고유의 정체성을 살리며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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