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학교 잔칫날 김밥 싸는 법

by Sia

2024년 연구를 하면서 절친이 된 미국 ENL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선생님 킴이 어느 날 문자를 보냈다.


"올해도 ENL 잔치하는데 오세요."


킴의 중학교와는 연구가 종료되면서 모든 관계가 끊겼다. 하지만, 킴과 계속 우정을 이어가면서 킴이 근무하는 학교와의 인연도 계속됐다. 학교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를 초청해 준 것에 감사해 한국 음식-김밥을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잔칫날 전 주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입맛도 없고 몸도 아프고 기분도 완전 꽝이라며 운전도 할 수 없단다. 김밥을 만들려면 한국인 마트에 가야 하는데 남편이 운전을 못하면 갈 수 없어서 킴에서 못 간다고 연락해야 하나 어쩌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하지만, 잔칫날 하루 전 다행히 남편이 운전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다.


작년 ENL 잔치는 음식도 많이 모자랐고, 먹는데 오래 걸렸다. 이번에는 음식을 충분히 장만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겨 김밥도 많이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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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은 손이 정말 많이 간다. 맛있게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김밥 재료 준비도 하루 종일하고도 절반이 들었다. 계란 15개를 풀어 최대한 얇게 부쳐 가느다랗게 잘랐다. 두껍고 큼직한 계란보다는 얇고 많은 계란 지단이 더 예뻐 보이고 맛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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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 우엉, 어묵도 최대한 얇게 그렇지만 너무 얇지는 않게 자르느라 내 두 다리는 통통 부었다.

시금치도 데쳐서 물기를 두 번에 걸쳐 짜내고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무쳤다. 다행히 당근은 며칠 전에 사둔 잘게 체 썬 당근을 사용해 그나마 수고를 덜었다. 참치는 꽉 짜내고 마요네즈를 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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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싸기도 전에 김밥 속 재료 준비가 99.9 퍼센트다. 시간과 노고가 너무 많이 든다. 내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나의 노고를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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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밥을 준비했다. 한꺼번에 많은 밥을 하면 맛이 없을 것 같아 2인분씩 나눠서 총 4인분 밥을 지었다. 며칠 전 쌀에 중금속에 많이 있다는 기사를 읽어 쌀도 30분 불린 다음 불린 물을 버리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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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최대한 얇게 펼치고 준비한 속 재료를 하나둘씩 쌓아 올렸다. 마요네즈 버무린 참치는 작은 김 위에 올렸다. 보통은 깻잎 위에 참치는 올리는데 혹시나 깻잎 냄새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김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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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압력을 가하면서 돌돌 말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면 끝! 비주얼은 그리 나쁘지 않다. 꼭지 하나 입에 넣고 맛을 보니 간도 딱 적당.


총 15줄이 나왔다. 전부 자르고 통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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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맛있는 김밥 꽁지는 내 점심으로 남겨두고 킴을 위해 어제 산 수박도 몇 조각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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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돼서 부랴부랴 챙겨 집을 나섰다. 킴의 학교는 걸어서 10분 거리. 하지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더니 중간쯤에는 소낙비가 내린다. 왼쪽 팔이 완전 젖었다. 하지만 내 김밥을 맛있게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젖은 옷에 기분 나빠하지 않기로 했다.


ENL 잔치는 학생들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추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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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가지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시식 시간이 왔다. 학교 측에서는 피자를 준비했고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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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하나를 통째로 넣어 구운 빵, 한국식 주먹밥과 약밥과 비슷한 음식들도 보였다. 자랑스러운 한국 음식은 내가 만든 김밥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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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김밥을 보고 초밥이냐고 물어봐 한국음식 김밥이라고 당당하게 알려줬다. 킴과 안면이 있는 선생님들에게 내가 만든 김밥을 꼭 먹어보라고 권유하고 나도 여러 가지 음식을 시식했다.


내 김밥이 제일 건강하고 제일 예쁘고 맛있는 음식인 것 같아 아주 뿌듯했다. 마지막 김밥 한 개가 남아 걱정했는데 어떤 여학생이 먹어 결국 모든 김밥이 동이 났다. 텅텅 빈 통 2개를 다시 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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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 후 맑게 개인 하늘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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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는 진실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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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 클로버를 찾지 못해도 타인에게 준 기쁨 때문에 오늘 하루 운수 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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