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공부가 아닌 삶이 되어야 하는 이유

by Sia

며칠 전 우연히 외국어 공부 방법에 대한 유튜브 비디오를 봤다. 미국인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유튜버가 만든 영상이었는데 일본어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어 학습법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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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마빈 브라운 (Marvin Brown-From the Outside In)이라는 언어학자의 짧은 자서전에 기초했다. 언어습득에 관련된 이론과 학자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빈 브라운은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라 호기심이 최대치로 발동했다.


영상을 본 후 브라운의 자서전을 읽었다. 태국어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브라운은 학자의 길보다는 직접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택했다. 태국에서 영어와 태국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언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100프로 자유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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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원어민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불릴 만큼 태국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브라운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만큼 태국어를 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배운 대로 가르친다고 브라운이 알고 있던 언어 교수법은 문법중심이자 무한 패턴 반복 연습이었다.


태국에서 몇 년 가르치다 다시 미국으로 와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브라운은 끔찍한 학생 평가를 받고 자신의 교수법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스티븐 크라센의 이론을 다시 접하게 되고 언어 습득에서 "듣기"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브라운은 말한다.

언어는 단어 학습이 아니라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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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의미를 일대일 대응(예: apple- 사과)으로 외우는 것은 단어로 생각하는 것이고 단어로 생각하는 언어는 부자연스럽고 말을 할 때 쉽게 튀어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으로 알게 된 단어는 상황과 맥락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그림으로 생각하며 배워 차원이 다른 뭔가가 된다. 이런 단어는 내가 직접 "알고, 소유하고, 내 삶에 존재"하는 어떤 실체다. 그래서 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브라운은 이런 경험은 폭포수 아래서 물을 받는 것처럼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벽한 언어습득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하는 것은 오히려 언어 습득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언어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은 절대 진정한 언어 습득에 도달할 수 없다.

You don't do it. It does you.


우리가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말하면서 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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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생각, 인지"가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것처럼 우리는 스피킹 (행동)으로 언어를 배우지 않고 리스닝-듣기(생각)으로 언어를 습득한다. 사실 말하기를 하는 방법은 듣기로부터 출발한다.


스티븐 크라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은 유일하게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의미-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이죠.

말을 한다는 것은 (영어 스피킹은) 의미를 이해한 결과다. 영어 스피킹은 배울 수 없다. 영어 스피킹은 우리가 듣고 이해한 메시지를 듣고 난 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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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은 영어 듣기를 하면서 절대 해서는 안될 끔찍한 네 친구를 소개한다.

1. 영어로 절대 말하지 말 것

2. 영어문법이나 영어구조에 대한 질문 하지 말 것

3. 사전이용하지 말 것

4. 생각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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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식의 언어교육은 다음과 같다.


2명의 원어민 선생님이 학생 앞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이며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은 이 연기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 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새롭게 배우는 언어를 교사의 설명이나 모국어 사용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이나 다양한 몸짓 발짓을 해서 학생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기존 언어교육의 문제는 교사가 어떤 상황을 이용해 가르친다는 것이다. 언어 교사는 그 상황을 실제로 재현하고 살아야 한다.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는 상황을 가르친다면, 기존 언어 교사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보통 "Nice to meet you."라고 말합니다."라고 상황을 이용해 가르친다. 하지만 브라운식으로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학생들 앞에서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상황을 만들어 보여준다.


브라운은 절대 학생들에게 단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단어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단어는 스스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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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은 이런 식으로 '이해 가능한' 듣기를 500시간 이상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00시간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원어민식 발음으로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 5일을 이런식으로 듣기를 한다면 2년 하고 한달이 걸려 500시간을 채울 수 있다.)


브라운이 태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 왔더라면 한국 영어 교육이 얼마나 다른 모습일지 상상해 본다. 공부를 너무 과하게 열심히 하는 한국인 정서와 너무 맞지 않아 브라운이 결국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브라운의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교육은 한국인 정서상 교육이 아니다. 시험을 치고 성적을 받고 숫자나 뭔가로 정형화된 점수가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브라운은 모든 유형의 시험이나 평가를 거부한다. 교사는 학생이 '이해 가능한' 듣기를 몇 시간이나 했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할 4가지를 하는지 안 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학생의 언어 실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자서전에는 이것을 계산하는 방정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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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결국 브라운이 하는 말은 영어를 공부가 아닌 내 삶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인 것 같다. 브라운 교사들은 학생들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이 교사의 연기를 통해 학생들은 영어를 살아 있는 경험으로 접하게 된다.


미국에서 살며 영어를 하는 미국인들과 같은 직장에 다니고 일을 하면 영어는 내 삶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에 살며 영어를 내 삶으로 만드는 방법은 뭘까?


사과를 단순히 apple이라고 외우지 않는 것이다. 영어 원어민의 apple 발음을 들으며 내 삶에서 사과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제 마트에 가서 사 왔던 사과. 사과의 냄새. 고등학교 때 한 절친이 점심을 굶었던 나에게 건네주었던 빨간 사과 하나. 마지막 사과 한 조각을 두고 누가 먹을 건지 동생과 싸우다 코뼈가 뿌러졌던 경험 등등..


물론 단어 하나하나를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대일 대응으로 공부한 단어는 내 삶이 아니기에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은 내 '말'이 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된다.


영어를 적극적으로 내 삶과 버무리는 작업이 바로 영어공부다.

영어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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