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by 불씨


세상은 늘 한결같은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바라보는 만큼만 존재하는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 겹쳐진 채 우리 곁을 맴돈다. 확정된 것은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순간에만, 비로소 세상은 형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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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세상이 정해진 틀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정답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안정에 닿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없이 넘어지고 길을 잃어보니 알게 됐다. 길은 애초에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냥, 내가 걸어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걸을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냈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길을 잃었을 때는 무서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 한 발자국 떼는 것도 버거웠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고, 손에 잡히는 건 끝없는 불안뿐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모든 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를 믿을 수 없던 시간들을 건너왔다.


좌절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다. 어떤 때는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작은 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작고 희미했지만,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 끝났다 생각한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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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돌아보면, 그때마다 세상은 나를 속삭이듯 이끌었다.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 어쩌면 조금만 방향을 바꿨다면 바로 앞에 길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길은 항상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도 친절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누구나 길을 잃고, 넘어지고, 때로는 아예 제자리에 멈춰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걸어가는 이유는, 걷는 그 자체가 우리를 살아있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꼭 대단한 의미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냥 오늘 하루를 견디고,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간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문득, 내 곁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따뜻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이어갔다.


길을 걸으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길의 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가 걸어야 길이 되고, 봐야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그렇기에 어떤 길은 걸어야만 보이고, 어떤 풍경은 지나쳐야만 피어난다. 마치 안개 속을 걸을 때처럼, 한 발자국 내디뎌야 다음 한 발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두려워하면서도 걸어간다. 예전처럼 모든 것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길이란 애초에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서툴게, 느리게, 때로는 비틀거리며 나아가도 괜찮다고.


길이 없다고 느꼈던 곳에 길이 있었고,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또 다른 시작이 있었다. 세상은 그렇게 나를, 우리를, 끊임없이 이끌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작은 걸음을 내딛는다. 비록 어딘가 확실한 곳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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