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떠난 300리,

일상 (Life 수필)

by 불씨

자유와 자연 속에서

한없이 달리고 싶은 길 위에서

나는 가끔 자전거를 타고 끝없이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바퀴에 몸을 맡긴 채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자유로울 것 같았다. 한강을 따라 남한강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기대와 다르다. 여정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선물한다.


출발, 첫 페달을 밟다

아침 7시, 집을 나선다. 전철을 타고 팔당까지 이동하는 동안 마음이 들뜬다. 배낭에는 간단한 간식과 휴대폰 충전기, 물통 두 개가 전부다. 헬멧을 단단히 고쳐 쓰고 자전거를 출발하자, 눈앞에는 선선한 바람과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출발하자마자 느껴지는 상쾌함. 페달을 밟을 때마다 새들이 노래하고, 꽃잎이 살랑인다. 도로 옆의 나무들은 마치 손을 흔들며 나를 응원하는 듯하다. 자전거 도로는 자동차 소음에서 벗어나 있어 더욱 좋다. 같은 길을 달리는 라이더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속도를 올린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그러나 이 완벽함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자연 속에서 느낀 자유, 그리고 갈증

강변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내리막길에서 두 팔을 살짝 벌려 균형을 잡아본다. 강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세상이 멈춘 듯하다. 남한강은 햇빛을 머금고 은빛으로 반짝이고, 강물은 바위에 부딪히며 졸졸 소리를 낸다.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자유야.' 원하는 속도로 움직이며, 원하는 만큼 멈춰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러나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매점 하나 없는 길 위에서 물은 바닥나고, 간식은 이미 허기진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 계속 페달을 밟으니 목이 타들어 간다. 갈증이 극에 달하자 결국 남한강물을 떠서 마신다. 손을 살짝 대고 천천히 입에 가져간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리며 온몸으로 퍼진다. 이 강물이 얼마나 깨끗한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음료보다도 값지다.


이포에서의 낮잠과 쉼

한참을 달린 끝에 이포에 도착한다. 더 이상 페달을 밟을 힘조차 없다. 자전거를 세우고 벤치에 몸을 맡긴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른하게 스며든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조금만…’ 하며 기대었는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진다.

눈을 뜨자,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멍하니 강물을 바라본다. "힘들면 잠시 멈추는 것도 여행의 일부겠지." 그러나 피로함 속에서 문득 가족들이 떠오른다. 평소엔 잊고 지내던 그리움이 스며든다.

강천보 근처, 자전거를 끌며 걷다

다시 출발하지만,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다리는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자전거를 끌고 걷는다. 두 바퀴에 대한 자존심은 잠시 내려놓는다.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강천보 인근에 다다르자, 강가에서 오리들이 유유히 떠다닌다. 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우아하게 날아오른다. 자연이 주는 위로는 말보다 깊다. 캠핑을 즐기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진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가족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막길에서의 사고, 헬멧의 감사

여주를 떠난 후 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내리막길에서는 속도를 즐기며 내달린다. 그러나 순간, 중심을 잃는다.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지고, 바닥이 가까워진다. 헬멧을 쓴 머리가 가볍게 땅에 닿는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몸을 일으키며 헬멧을 바라본다. '이게 없었더라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 작은 도구 하나가 생명을 지켜주는 순간이다. 이후 내리막길에서는 속도를 줄인다. 안전은 자유를 위한 기본이다.

자연의 품에서 만난 사람들

점심을 훌쩍 넘겨,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가 만나는 남한강교 근처에 도착한다. 배가 고프다. 고향인 강원도 음식을 먹고 싶어 우회하여 다리를 넘어서 식당을 찾다가 자전거를 멈춘다. 바람에 흔들리는 허름한 간판, ‘시골보리밥집’.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정하게 보인다.

“어서 오세요. 자전거 타고 오셨나 봐요?”

아주머니가 따뜻한 미소로 맞아준다. 따끈한 된장찌개와 밥 한 그릇이 눈앞에 놓이자, 온몸의 긴장이 풀린다.

“요즘 자전거 타는 분들 많아요. 충주 가는 길이에요?”

“네, 많이 힘드네요.”

“젊은이도 아니고 힘들 텐데, 그래도 끝까지 가봐요.”

그 한마디가 음식보다 더 큰 위안이 된다. 사람과의 따뜻한 교감,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큰 의미인지도 모른다.



탐금대에 도착하다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길은 여전히 길다. 페달을 밟을 힘이 남아 있는지 의문이 든다. 지루함과 피로가 몰려오지만,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 귀를 간질이는 새소리. 바람이 스치는 순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자연은 말없이 나를 응원하는 듯하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끝까지 가보자.’

마침내, 12시간의 여정 끝에 탐금대에 도착한다. 직선으로 뻗은 자전거 도로를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달린다. 세상이 멈춘 듯한 순간.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낸다. 마치 세상 끝까지 날아가는 듯한 자유로움이 온몸을 감싼다.

탐금대에 올라 강을 바라본다. 은빛으로 흐르는 강물, 노랗게 물든 들판. 그 순간, 찌릿한 감동이 밀려온다. 여정이 끝났음을 알리는 풍경 속에서,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

자전거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갈증 속에서도, 피로 속에서도, 자연은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페달을 돌리며 배운 자유, 쉼의 가치, 그리고 따뜻한 만남들. 이 모든 것이 내게 인생의 작은 교훈이 되었다.

길 위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페달을 밟을 것이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은 내 삶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자전거의 페달처럼, 인생도 계속해서 돌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지도와 GPX를 이용하여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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