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흡수하거나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다.
독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창조적 혼란의 예술
최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직접 읽기보다, 요약된 동영상이나 블로그를 통해 빠르고 쉽게 내용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읽는 책은 보통 400페이지로, 집중해서 읽으려면 8시간이 걸린다. 어떤 이는 이 긴 책을 10분짜리 영상이나 두 페이지 남짓한 블로그로 압축하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흡수하거나 지식을 쌓는 행위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타인의 사유와 감정, 시대와 언어의 구조 안으로 스스로를 던지는 일이다. 독자는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으며, 때로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낯설게 느끼게 된다. 좋은 독서란 이 낯섦을 견디는 일이다. 그 혼란 속에서 생각이 뒤섞이고, 익숙했던 판단이 흔들리며, 내면의 어떤 층위가 새롭게 드러난다. 진정한 독서는 평온보다 동요를 낳는다. 그것은 파문처럼 퍼져 나가며 독자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다시 쓰는 과정이다. 한 문장, 한 단락이 마음속 오래된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관점의 씨앗을 심는다. 독자는 처음에는 저자의 말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을 넘어서 자신의 언어로 다시 사유하기 시작한다. 이때 비로소 독서는 타인의 텍스트를 내면의 언어로 번역하는 창조 행위가 된다. 즉, 책은 읽는 자에 의해 완성된다. 읽는다는 것은 곧 ‘공감’과 ‘저항’이 공존하는 지적 투쟁이다.
다독가는 이런 투쟁을 즐긴다. 그들은 책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는다. 책과 대화하고, 논쟁하고, 때로는 반박하며 읽는다. 한 권을 덮은 뒤 또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내고, 한 권의 세계가 또 다른 세계로 문을 열기 때문이다. 다독이란 깊지 않은 읽기의 반복이 아니라, 연결과 확장의 연쇄다. 다독가는 그 연쇄 속에서 스스로의 사유 체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갱신한다. 그들에게 책은 지식의 저장소가 아니라 살아 있는 대화 상대다. 그래서 다독은 곧 ‘삶의 확장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튜브에서 5분 만에 배우는 양자역학은 단기적인 지식을 줄 뿐,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게 하지는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속도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빨리 읽기’는 점점 미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음식을 삼키듯 책을 소비하는 일일 뿐, 소화되지 않은 채 흘러가 버린다. 깊은 독서는 느린 미학이다. 문장 하나를 되새기며, 저자의 생각을 음미하고, 자신의 경험과 섞는 과정에서 사유의 향이 피어난다. 천천히 읽는 사람은 결국 더 멀리 간다.
이 느림은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문장 속에 숨은 함의를 찾고, 문체의 리듬을 듣고, 저자의 의도와 무의식이 부딪히는 지점을 감지하는 일이다. 한 문장을 곱씹을 때, 언어의 구조가 드러나고, 언어를 넘어선 세계가 보인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해석자이자 창조자가 된다. 느리게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 정지의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독서는 사유의 정거장이다.
또한 독서는 경험의 전이이기도 하다. 우리는 책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낯선 시대와 문화를 경험한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살아본다. 철학서를 읽을 때는 사고의 프레임을 확장한다. 역사서를 읽을 때는 인간의 반복된 욕망과 비극을 통찰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현실의 직접 경험보다 더 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독서는 위험 없이 타인의 실패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삶의 실험’을 대리 수행한다. 실패와 고통을 텍스트로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을 좀 더 신중하게, 그러나 용기 있게 만들 수 있다.
독서가 단순히 ‘유익한 활동’으로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책이 도구화된다. 시험을 위한 독서, 자격을 위한 독서,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 물론 이런 독서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독서의 본질이 아니다. 책을 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자기 확장’이다. 책은 우리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복잡함이 바로 인간의 품격이다. 단순한 답 대신 수많은 질문을 품는 능력, 그것이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문장 하나가 우리의 내면에 정착한다. 그 문장은 상황이 달라져도, 세월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문장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어떤 문장은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게 한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다만 그것은 갑작스러운 번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의미의 발화다. 책 속 문장들이 서로 엮이고, 그 엮임이 어느 날 한순간에 통찰로 터져 나올 때, 우리는 그것을 ‘변화’라고 부른다.
이처럼 독서는 혼돈에서 시작해 통찰로 끝난다. 처음에는 어지럽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성장이 있다. 좋은 책은 늘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은 낯선 사유를 강요하고, 당연한 것을 의심하게 만들며, 때로는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독서는 ‘균형을 위한 혼란’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것은 새로운 균형을 향한 전조다. 한 권의 책이 던진 파문이 마음속에 남아, 시간이 지나 다시 고요해질 때, 그 고요는 이전의 고요와 다르다. 그것은 더 넓고, 더 깊다. 독서는 그렇게 우리를 바꾼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요약하자면, 독서는 요리와 같다.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정보 소비는 인스턴트 식사와 같다. 속은 채울 수 있지만, 깊은 맛은 남지 않는다. 마음을 어지럽히고 흔들리지만 영혼을 채우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미학이다. 느림은 사유의 품격이며, 혼란은 성장의 징후다. 처음에는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불편함 속에 성장이 있다. 그리고 책은 그 느림과 혼란을 통해 우리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더 나은 존재로 바꿔 놓는다.
이 때문에 책 한권을 요약된 동영상이 아니라 긴시간 동안 독서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