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11월 14일에 이어 다시 중복된다.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반가운 이유는 하루 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고, 당황스러운 것은 소재에 대한 궁핍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 편하게 소나무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건강이 좋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다. 죽은 고비도 두어 번 넘겼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건강에 매우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다.
1980년대쯤으로 기억된다.
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누군가가 내게 솔잎 가루 환을 먹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솔잎 가루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300일 동안 곡식을 끊고 솔잎 가루만 먹으면 얼굴빛이 밝게 빛나고 기운이 충만해진다고 전해진다. 3000일 동안 먹으면 정신이 맑아져 귀신도 볼 수 있고, 30년 동안 계속 복용하면 귀신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고 맑은 기운이 몸을 둘러싸 보호하여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다고도 한다.
그 말에 솔깃하여 그다음 날 곧바로 경동시장으로 달려갔다.
경동시장에서 파는 솔잎 환을 사 가지고 와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솔잎 환이라는 게 영 미덥지가 않았다. 어느 곳에서 딴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향에 자라는 소나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 사시는 막내 외삼촌에게 부탁을 하였다.
솔잎을 따서 가루로 좀 만들어달라고,
수고비는 넉넉히 드린다는 말씀도 함께 말이다.
부지런한 외삼촌은 흔쾌히 그러마 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났을까?
외삼촌이 직접 솔잎 가루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새파란 솔잎 가루를 거의 한 말도 넘게 만들어가지고 오신 것이다. 곱게 빻은 솔잎 가루는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너무 예뻤다.
외삼촌 말씀에 의하면 건조기 덕분에 그렇게 새파란 솔잎 가루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내 얘기를 듣고 곧바로 산에 올라 솔잎을 거의 한 가마니도 넘게 따 그늘에 잘 널어두었단다. 그랬더니 솔잎이 누른 개비가 되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다 버리고 다시 따와 약재상을 하는 사촌의 건조기에 넣어 말렸단다.
외삼촌이 가져온 그 귀한 솔잎 가루를 수저로 떠서 곧바로 입안에 넣었다.
오~
그런데 가루가 입안 가득 날리면서 숨도 쉴 수 없었다. 캑캑 거리며 어머니가 주는 물을 마셔서 간신히 진정시켰지만 입천장은 물론 목구멍 깊은 곳까지 솔잎 가루가 남아있어 꺼끌꺼끌하여 견딜 수 없었다.
솔잎 환으로 만들어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솔잎 가루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를 한참 고민한 끝에 경동시장 약재상에서 환을 만들던지 물에 타 마시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은 병에 담아 사무실로 가져가 외삼촌이 권한대로 물에 타 마셔보았지만 여전히 입안에 남은 솔잎 가루 때문에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내일모레 신선이 된다고 해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화실을 같이 쓰는 우란 여사가 그 얘기를 듣더니 솔잎 가루를 좀 달라고 한다. 치과를 개업한 막내딸이 변비가 심해 고생을 하는데 변비에 솔잎 가루가 즉방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단다.
다음날 꽤 많은 솔잎 가루를 우란 여사에게 갖다 주었다. 며칠 후 우란 여사는 솔잎 가루를 편히 먹는 방법을 알았다고 했다. 그 방법은 솔잎 가루를 꿀에 재어두었다. 먹는 것인데 꿀에 잰 솔잎 가루를 한 수저씩 떠먹으면 입안에 달라붙지 않고 좋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우란 여사가 그 솔잎 가루를 전부 팔란다.
변비로 고생 고생하던 딸의 변비가 완전히 없어졌단다. 그렇게 해서 나는 외삼촌이 만들어온 솔잎 가루를 전부 우란 여사에게 줘버렸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솔잎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솔잎을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고 머리도 맑아질 것 같은 이상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 생각난 것이 솔잎 진액이었고 다시 외삼촌에게 전화를 하였다.
싱싱한 솔잎을 구해서 그냥 보내달라고, 며칠 뒤 택배로 엄청난 양의 어린 솔잎이 생솔가지째 배달되어왔다. 큰 고무 통에 그 솔잎과 가지를 넣고 설탕을 넣어 숙성시켰다.
그러나 솔잎은 물기가 거의 없어 진액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몇 달 후 큰 고무 통에 가득 담겼던 솔잎과 가지에서 얻은 진액은 소주병으로 세 병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진액을 물에 타 마시면 간단하게 솔잎을 먹는 거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신기한 것은 솔잎 진액이 얼마나 진하던지 머그 컵에 물을 가득 붓고 한두 방울만 떨어뜨려도 진한 솔향에 취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 진액을 별로 먹지 않았다. 두 병은 탐내는 이웃들에게 나누고 한 병만 남겨두었다 가끔 아주 가끔 솔향기가 그리울 때 물에 타 차로 마셨을 뿐이다. 아끼고 아꼈던 솔잎 진 액 어제 집 정리를 하다 보니 아직도 소주병에 그때 만든 솔잎 진액이 있다.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솔향이 가득하다.
지금은 고향 선산에 잠들어 계신 어머니와 외삼촌이 오늘따라 몹시 그립다.
소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침엽 상록수다.
늘 푸르고 낙엽도 잘 지지 않는다. 줄기와 잎이 멋스러워 동양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소나무는 ‘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는 나무’라는 전설이 있을 만큼 신성시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소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다. 묵송(墨松)을 즐겨 그리셨던 호산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잎이 3~5개씩 모여 나는 것은 왜송이며, 잎이 침형으로 2개씩 모여 나는 것은 조선 솔, 즉 우리나라 소나무라고 한다. 조선 솔은 다시 적송과 흑송으로 나뉘는데 흑송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을 일컫는 데 적송에 비해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향약집성방〉에서는 “솔잎 적당량을 좁쌀처럼 잘게 썰어 갈아먹으면 몸이 거뜬해지고 힘이 솟으며 추위를 타지 않는다"라고 했으며, 〈동의보감〉에서는 “솔잎을 오랫동안 생식하면 늙지 않고, 원기가 왕성해지며, 머리가 검어지고, 추위와 배고픔을 모른다"라고 했다.
솔잎은 비타민A 함유량이 많아 혈액을 맑게 해 주며 고혈압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장질환, 위장질환, 신경계 질환, 순환계 질환과 피부 보호에 효과가 있다. 또한 중풍, 동맥경화증, 고혈압, 당뇨병 같은 노인성 질환을 예방해준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라, 솔잎은 우리 식생활에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송편을 찔 때나 솔잎 진액을 만들어 차로 마셨고 송홧가루는 다식을 만들었다.
솔잎을 넣고 송편을 찌는 것은 떡이 서로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지만 솔향이 송편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이외에도 솔잎에 함유된 피톤치드의 주성분인 테르펜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균 등의 접근을 차단해 방부제와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솔잎 진액으로 음료로 만들어 먹는 것 역시 솔향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송홧가루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수한 향신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솔잎 [Pine] (셰프가 추천하는 54가지 향신료 수첩, 2011. 3. 30., 최수근,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