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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Jan 07. 2023

1월 7일 탄생화 / 튤립 전쟁 / 튤립 전설과 꽃말

오늘의 탄생화 


1월 7일 탄생화 튤립 



이른 봄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는 꽃이 바로 튤립이다.


화단 가득 같은 색상의 튤립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 저절로 걸음을 멈추게 된다. 키우기 쉽고 꽃도 예쁜 데다 오래 피어 봄철 정원에 없어서는 안 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튤립을 볼 때마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튤립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필자가 사는 지역에는 도로변 작은 화단에 튤립이 심어져 있다. 이렇게 키우기 쉬운 꽃이 어떻게 해서 그런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값비싼 꽃을 이렇게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당혹하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튤립 전쟁에 대해 살펴보자.



튤립 전쟁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과열 투기 현상으로, 자본주의 최초의 버블 경제 현상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남해 거품 사건, 프랑스의 미시시피 거품과 함께 고전 경제기의 경제 위기 중 하나로 꼽힌다.


거대 제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에서 과중한 세금과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1568년에 독립전쟁이 발생하여, 1648년 네덜란드는 베스트팔렌 조약과 함께 공식적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17세기 종교적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정착한 유대인들과 위그노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금융업에 뛰어들었고, 1609년에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어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자, 네덜란드 전역에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들어서며, 실물 상품과 함께 주식, 외환, 신용대출까지 손을 뻗쳤다.


스페인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독일이 30년 전쟁으로 보헤미아와 체코의 직물 산업이 붕괴되면서 네덜란드의 업자들은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 축척된 자본으로 투자대상을 찾던 네덜란드 사업가들의 눈에 신비한 꽃 튤립이 눈에 들어왔다. 튤립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주재하던 오스트리아의 한 외교관이 선물로 받아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여온 후 플랑드르의 식물학자 샤를 드 레클루제가 1593년 레이던 대학교수로 임명되면서 네덜란드에 들여왔다.



이전에도 튤립은 몇몇 부호들이나 식물 애호가들은 알고 있던 꽃이었지만,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단색의 평범한 튤립은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었지만 희귀한 튤립은 무척 귀하고 값도 비싸, 희귀한 튤립의 개수 여부에 따라 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자 부유층들이 앞다퉈 희귀종을 찾게 되었다.


누구라도 희귀종과 특이한 변이종을 만들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보니 네덜란드 전역은 튤립 구근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고, 가난한 서민들은 튤립을 재배하면서 일확천금의 꿈을 키웠다. 당시 최고의 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튤립 재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런 이유로 400여 종의 신 품종이 개발되었다. 때마침 재발한 흑사병으로 네덜란드 인구의 1/8이 죽게 되자 사람들은 튤립 투자에 더 집중했다. 투자의 대상은 주로 구근으로 변형을 거듭한 특이한 종자나, 족보가 있는 구근들은 희귀품이 되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636년 줄곧 오르던 튤립 구근 가격은 1637년 1월에 절정에 달해, 하루에 두세 배, 한 달에 무려 몇 천 퍼센트가 상승하기도 했다. 이때 튤립 구근의 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1636년 가장 비싼 품종인 "황제(Semper Augustus)"라는 구근 한 알의 가격이 무려 2500 길더였다. 2500 길더는 오늘날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튤립 한 뿌리에 약 2만 5천 달러로 우리 돈 3,000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튤립 매매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수만 명이었고 계약서가 주식처럼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1637년 2월 5일 튤립 가격이 갑자기 하락세로 돌변한 것이다. 너도나도 튤립 재배에 뛰어들자 어느덧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고, '단순한 꽃을 이렇게 비싸게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라고 사람들이 뒤늦게 자각하면서 구매자가 사라지자 튤립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무너진 튤립 가격은 불과 4개월 만에 최고점에서 90% 이상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은 투자금액의 1~5% 정도만 간신히 건질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어음의 부도로 줄소송이 이어져 네덜란드는 혼란에 빠지자 네덜란드 정부는 1636년 11월을 기점으로 그 이전 계약을 모두 무효로 하고 그 이후에 맺어진 계약에 대해서는 투자자가 생산자에게 계약 금액의 10퍼센트를 물어주는 선에서 합의안을 냈다. 


이렇게 튤립 파동은 끝이 났고, 일확천금을 꿈꾼 이들의 해프닝성 일화로 남아있다.



튤립[ tulip ]


튤립은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구근 초로 학명은 Tulipa gesneriana이다.



남동 유럽과 중앙아시아 원산이다. 내한성 구근 초로 가을에 심는다.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이고 원줄기는 곧게 서며 갈라지지 않는다.



잎은 밑에서부터 서로 계속 어긋나고 밑부분은 원줄기를 감싼다. 길이 20∼30cm로서 넓은 바소꼴이거나 타원 모양 바소꼴이고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며 안쪽으로 약간 말린다. 빛깔은 파란빛을 띤 녹색 바탕에 흰빛이 돌지만 뒷면은 짙다.



꽃은 4∼5월에 1개씩 위를 향하여 빨간색·노란색 등 여러 빛깔로 피고 길이 7cm 정도이며 넓은 종 모양이다. 화피는 위로 약간 퍼지지만 옆으로는 퍼지지 않으며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2cm 정도로서 원기둥 모양이며 녹색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7월에 익는다. 관상용 귀화식물로서 원예농가에서 재배한다.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튤립 [tulip]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튤립 전설


어떤 작은 마을에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착하고 여린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소녀였다.


어느 날 그 소녀에게 세 명의 청년이 동시에 청혼을 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그 나라 왕자였고,

두 번째 청년은 용감한 기사였으며,

세 번째 청년은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이었다.


왕의 아들은 소녀에게 말했다.


“만일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나의 왕관을 그대의 머리에 얹어드리겠습니다.”


그다음으로 청혼한 기사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이 만일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인 보검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내 금고 속에 가득 들어있는 황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이 세 명의 청혼자의 청혼을 모두 거절했다.


그러나 청년들은 자신이 좋은 남편감이라며 결혼을 하자며 끈질기게 청혼을 거듭했다. 하지만 소녀가 끝까지 그들의 청혼을 거절하였고 세 청년은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붓고 떠나갔다.


“나중에 평생 동안 결혼도 하지 못할 여자”


소녀는 청년들의 저주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혀 그만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꽃의 여신 ‘플로라’는 소녀를 튤립으로 변하게 했다.


이런 이유로 튤립의 꽃송이는 왕관 모양이고, 잎은 칼처럼 뾰족하며, 꽃의 빛깔은 황금처럼 노란색이 되었다고 한다.


튤립 꽃의 꽃말은 '실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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