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진흙탕에서 고귀한 자태로 자라 단아한 큰 꽃도 아름답지만, 그 앞에 서면 저절로 막막해지는 진녹색 연잎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 앞에 서면 저절로 다소곳해진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인공도 바로 연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수련이다. 이 식물을 사진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조형물 같은 커다란 잎 위에 사람이 앉아있는 믿기 힘든 사진을 말이다. 그 사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식물을 직접 본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서울식물원 숲 문화학교 공감의 숲 체험 날 공교롭게 비가 내렸다. 이슬비를 맞으며 강사 선생님을 따라 야외 정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맨 처음 본 것은 연못이었고, 그곳에서 연과 수련 그리고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을 보았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 느낌이 강렬하다. 둥근 쟁반 같은 잎의 모습이 연잎이나 수련 잎과는 사뭇 다르다.
끝부분 직각으로 꺾인 잎 뒷면의 억센 가시는 공포를 주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 신비한 식물에 곧 매료되고 말았다.
강사 선생님이 알려준 식물의 이름은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이었다.
"빅토리아수련! 그렇다면 영국이 원산지인가요?"
내 물음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원산지는 아마존 강 지역인데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여 이름을 지었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조금 씁쓸해졌다. 아마존 유역에서 오래도록 자란 이 특별한 식물이 한 식물학자에 의해 원래 이름을 잃어버리고 낯선 빅토리아수련이 되었다니...
내가 관심을 보이자, 선생님이 말했다.
"여기는 야외 연못이라 잎이 작지만 온실에 가면 더 큰 빅토리아수련을 볼 수 있어요. 신기하게도 이 수련은 꽃이 밤에만 펴요. 나도 한 번뿐이 못 봤어요."
그러면서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아마존빅토리아수련 꽃 사진을 보여주었다.
첫날은 하얗게 피었다가, 다음날은 분홍으로 변했다가, 마지막 셋째 날은 이 수련의 이름인 빅토리아 여왕이 쓴 왕관처럼 화려한 형태의 꽃으로 만개한 뒤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시든다는 말과 함께.
밤에만 꽃이 핀다니 꽃을 보는 일은 어려울 듯하다. 연못 속 빅토리아수련 꽃봉오리. 잎에 비해 작은 꽃봉오리가 눈길을 끈다.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을 보기 위해 서울식물원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야외 정원이 아닌 온실로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야외 연못에서 보았던 것보다 조금 더 큰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연못보다 잎이 조금 더 컸지만 사람이 올라탈 정도로 크지는 않다. 실내 온실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야외 연못 잎보다 연약해 보인다.
조금 미안한 비유이지만, 잎의 생김새가 김장할 때 쓰는 김장 매트와 크기와 모습이 너무 닮았다^^
아마존빅토리아수련은 쌍떡잎식물 수련목 수련과의 수생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Victoria amazonica이다.
원산지는 가이아나와 브라질의 아마존 강 유역으로 큰 가시연꽃이라고도 한다. 1801년경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에서 식물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뒤, 아르헨티나와 아마존강 유역에서 발견되면서 1836년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 여왕을 기념하여 학명을 Victoria regia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1849년 영국의 원예가이며, 건축가인 J. 팩스턴이 처음으로 온실에서 인공적으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하였다. 여기서 얻은 종자가 유럽·아시아·아메리카의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잎은 물 위에 떠 있고 원 모양이며 지름이 90∼180cm로 어린아이가 잎 위에 앉아 있을 정도로 크고 가장자리가 약 15cm 높이로 위를 향해 거의 직각으로 구부러진다.
잎 표면은 광택이 있는 녹색이고 뒷면은 짙은 붉은색이며 가시 같은 털이 있다.
꽃은 8월부터 10월 사이 개화 후 단 3일만 핀다. 낮에는 이렇게 꽃봉오리 상태로 있다가
밤이 되면 가시로 덮인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의 지름은 25∼40cm이나 되는 흰색의 아름다운 꽃은 진한 향기와 열을 내뿜다가
이튿날 해가 뜨면 그 꽃잎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닫혔던 꽃은 다시 활짝 피어 점차 분홍색에서 붉게 물들어간다.
마지막 순간 흰 꽃잎과 진분홍 꽃잎은 모두 아래로 젖혀지고 수술과 암술의 모습이 마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왕이 대관식을 위해 왕관을 쓴 것 같다고 하여 '여왕의 대관식'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이 화려한 모습도 잠시, 꽃은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열매를 맺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렇듯 아름답고 향기까지 좋은 빅토리아수련 꽃은 밤에만 피는 데다 3일밖에 볼 수 없어 일반인들이 좀처럼 볼 수 없으니 더욱 신비하고 귀한 꽃이 아닌가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은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