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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Aug 18. 2022

세월의 무게

삶의 단상 /


산책을 할 때마다 지지대에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소나무들을 보게 된다.


내사 사는 아파트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파트에 조경수로 심어진 소나무들은 신축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병든 소나무처럼 잎이 말라 가거나 심한 가지치기로 늘 안타까움을 유발했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소나무를 사랑하여 조경수로 선택을 받지만, 수형(樹形) 이 아름다운 나무를 선호하다 보니 새로 옮겨 심은 땅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규모가 있는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면 조경수로 큰 소나무가 심어졌다. 


그러나 소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릴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다. 신축 아파트에 심어진 소나무는 시름시름 앓거나 말라죽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소나무가 집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유하다는 것을 상징했을 만큼 모양이 번듯한 소나무 가격은 웬만한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다. 청운동에 살 때 청운동 저택에는 의례히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높은 담 위에 우뚝 솟아 그 위용을 드러낸 소나무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일부러 그 소나무를 보기 위해 자하문 입구에서 내려 청운동 골목길을 걸어서 올라 다닐 때도 많았다.

이곳으로 이사한 뒤에 아파트에 소나무가 많아 안도했다. 소나무들은 푸르렀고 줄기와 가지는 아름다웠다. 봄이면 송홧가루를 날려 봄을 알려주었고 여름이면 더욱 짙은 녹음을 선물했으며 가을에는 높고 맑은 푸른 하늘과 케미를 뽐내며 도시에서 보기 힘든 귀한 솔방울 줍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흰 눈과 푸른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절경을 연출했다.


그 아름답던 소나무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모두 지지대에 의지해있다. 더러 링거를 몇 개씩 매달고 있기도 한다.


소나무를 볼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에 사셨던 스승인 호산 이원종 선생님이다.

소나무/ 수묵 담채 / 호산(湖山) 李完鍾

소나무와 매화로 유명한 선생님의 집 정원에는 아름다운 소나무가 무려 16그루나 있었다. 일요일마다 공부를 하러 대전에 갔을 때 대전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비래동 소나무 많은 집' 가자고 하면 기사님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지금은 선생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그 많던 소나무와 매화와 감나무들은 여전히 그 정원에서 잘 자라고 있는지...

오늘도 산책길에 쇠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는 힘겨운 소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걸을 때마다 무릎에 느껴지는 통증 때문 만은 아니다.

지금 내가 사는 곳


소나무도

그곳에 사는 나이 든 할머니들도

몸을 지탱하기 위해 보조기가 필요하다.


세월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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