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세월은 마음을 무디게 하고,
기억은 흐릿해진 얼굴을 조심스레 감춘다.
그러나 어떤 꽃은, 지나간 이름 하나에도
순간 모든 것을 불러내곤 한다.
아스포델.
이름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그리움의 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
그러나 막상 손에 쥐려 하면 자꾸만 멀어지는 듯한 그 모습.
하얀 꽃잎이 별처럼 피어나는 이 꽃은
고요하고 덤덤하지만, 그 속엔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스포델(Asphodel)**은 유럽 남부, 특히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식물학적으로는 **백합과 또는 아스포델과(Asphodelaceae)**에 속하며,
봄에서 여름에 걸쳐, 길게 뻗은 줄기 끝에 작고 별 모양의 흰색 또는 분홍색 꽃이 총상으로 모여 피어납니다.
학명은 Asphodelus albus 또는 Asphodelus ramosus,
흔히 무덤가나 들판에서 피는 야생화로 알려져 있지만
그저 야생의 꽃이라 부르기엔, 이 꽃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아스포델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이들이 머무는 **‘아스포델 초원(Asphodel Meadows)’**의 꽃입니다.
영웅은 엘리시움으로, 악인은 타르타로스로 가지만,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영혼들은 바로 이 들판에 머물렀지요.
그곳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단지 조용하고 무채색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들판을 ‘기억’이라 불렀습니다.
삶 속에서 사랑했으나 전하지 못한 말들,
끝내 묻어둔 감정들,
그리고 잊지 못하는 이름 하나.
그 모든 것이 아스포델의 들판에 남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윌리엄 워즈워스는 시에서 아스포델을 ‘추억의 그늘에서 피는 꽃’이라 말했고,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죽은 자의 혼이 이 꽃을 밟으며 지나간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움
영원한 사랑
죽음과 부활
잊지 못할 기억
영혼의 평안
이 꽃의 꽃말은 곧, 누군가를 향한 기억의 형식입니다.
잊지 않기 위해 피어나는 꽃, 잃어버린 시간을 꺼내기 위해 피어난 꽃이 바로 아스포델입니다.
지금,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이미 떠나간 사람일 수도 있고,
멀어졌지만 잊히지 않는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끝내 닿지 못한 사랑일지도 모르죠.
그 이름을 속으로 한 번 부르고,
그를 향한 조용한 기도를 담아
작은 아스포델 한 송이를 마음속 들판에 놓아보세요.
그대가 잊지 않으면,
그 꽃은 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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