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탄생화
어느 여름날 아침,
햇살보다도 붉은 꽃이 창밖을 스쳤다.
가시 하나 품은 채 피어난 고결한 장미.
그 꽃의 이름은 링커스터 장미.
오늘, 7월 23일의 탄생화다.
장미라 하면 사랑과 열정의 상징쯤으로 알고 넘기기 쉬운데,
이 장미는 조금 다르다.
사랑을 품되, 싸움을 겪고, 평화를 피워낸 장미.
그 속에는 단순한 꽃 이상의 역사가, 감정이,
그리고 인간의 갈등과 화해의 서사가 담겨 있다.
15세기 영국.
왕위 계승을 둘러싼 두 귀족 가문, 요크와 링커스터가
왕관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전쟁,
역사는 이를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이라 불렀다.
요크 가문은 흰 장미를,
링커스터 가문은 붉은 장미를 내세웠다.
하얀 것과 붉은 것.
순수와 열정, 빛과 피, 꿈과 현실이 충돌하듯,
두 색의 장미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상징이 되어
영국 땅을 붉게 물들였다.
30년의 싸움.
그 안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고, 수많은 사랑이 짓밟혔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끝내는 한 사람의 결단이 새로운 시대를 연다.
헨리 튜더.
그는 링커스터의 핏줄이면서 요크의 여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다.
그리하여 두 장미는 하나가 되었고,
새로운 시대는 **튜더 로즈(Tudor Rose)**라 불리는
겹장미로 피어났다.
붉은 장미 안에 흰 장미가,
상처 속에 용서가,
절망 속에 희망이
비로소 한 송이 꽃이 되어 완성된 순간이었다.
링커스터 장미의 꽃말은 ‘전쟁과 평화’.
너무나도 명징한 이 꽃말은
이 장미가 단순한 식물이나 장식이 아니라,
한 국가의 고통과 치유의 상징임을 말해준다.
전쟁은 그치고,
상처는 마르고,
사람들은 그 붉은 장미를 바라보며
화해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니 이 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고,
한 편의 시이며,
피로 쓴 역사 위에 피어난 살아 있는 상징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에는
이 장미들이 등장한다.
한 장면에서는 두 귀족이 장미를 각각 꺾으며 말한다.
“나는 흰 장미를 들겠소.”
“그렇다면 나는 붉은 장미를 택하리다.”
단 두 줄의 대사.
하지만 거기엔 전쟁의 서곡이 흐르고 있다.
장미는 말없이 역사의 무대 위로 올라서고,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시대가 바뀐다.
가끔, 우리는 내면에서 전쟁을 겪는다.
용서하지 못한 자신과
이해받고 싶은 타인 사이에서,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눈물과 웃음 사이에서.
그때마다
링커스터 장미를 떠올려 본다.
피를 상징하던 그 장미가
끝내 화해의 상징이 되었듯,
우리 마음속 전쟁도 언젠가는 평화를 찾을 수 있으리라.
오늘이,
그 평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7월 23일 – 링커스터 장미 (Lancaster Rose)
꽃말: 전쟁과 평화
https://youtu.be/93-93WtAjwg?si=NvvhoQvX4JIgB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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