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지금, 쓰고 있는가

‘작가의 꿈’ 대신, '글의 본능'으로

by 화니

브런치 식구 된 지 20일째. 스물다섯 개의 글을 발행했다.

누군가는 부럽다는 ‘글병’의 초기 증세로, 허공을 지나가는 생각과 글자들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노화로 생긴 비문증처럼, 안과에 가도 답이 안 나올 병이다. 처음엔 이게 병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들, 눈앞을 떠도는 단어들. 그들을 잇다 보면 생각은 끝없는 꼬리잡기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 소식을 보고, 또 어떤 글자들이 솟아날지 나도 궁금해서 두드려본다.


작가의 꿈? 글쓰기에 빠질 줄은 몰랐다.


교사 연수 강사 시절, 원고에서 가장 어려운 건 서론이었다. 본론과 결론은 자료만 붙이면 됐지만, 시작은 달랐다. ‘왜, 무엇을, 어떻게 이런 수업을 했는가’를 내 언어로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목 쓰고, 이름 쓰고, 줄 넓게 띄워도 겨우 열 줄 남짓. 그 열 줄에 의도를 담으려고 밤을 지새운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쓰고, 지우고, 다시 붙잡다가…

결국 서론은 비워두고 본론부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몇 줄에 쏟은 시간으로 브런치 매거진 몇 권은 냈겠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글이 자동 출력된다. 버튼도, 과제도, 동기도 없다. 생각이 닿기만 하면 손가락 사이로 물 새듯 글이 흘러나온다. 감정인지 감성인지 모를 것들이 터져 나와 문장 되어 쌓여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이리저리 엮어낸 이야기들을 노쇼하다 보면 ‘글병’이 말기까지 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브런치를 만났다. 호기심에 발을 들였고, 예상 밖의 효과가 따라왔다. 링거 한 방 맞은 듯 안정됐고, 방향을 제대로 찾아갈 기운이 생겼다. 브런치가 그 변화를 이끌었고, 글병은 어느새 ‘글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후로 매일 글을 쓴다.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떠오르는 대로 이어가는 글쓰기가 이렇게 오래 계속될 줄은 몰랐다.


예전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단톡이며 개인톡으로 보고 느낀 걸 마구 쏘아댔다. 기관총 난사처럼. 지금도 그들이 내 곁에 있는 건, 운이 좋았거나 내 사정거리 밖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고맙다, 살아남아 줘서.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주절댔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의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참 편하다.


브런치는 딱 그런 곳이다. 더없이 자유롭고 여유롭다. 가지 않아도 되고, 누워서도, 언제라도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부자가 된 기분이다.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지나가던 날들에 비하면, 이건 분명한 변화다. 나를 충분히 해명하고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귀하고 드물다. 이보다 더를 바라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나 ‘꿈’이라는 말은 아직 낯설다. 사전은, 작가를 예술품을 창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 기준이면 나는 작가 자격시험에서 빵점이다. 내가 쓰는 건 문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그걸 종사라고 부르기엔 좀 민망하다. 그저 내 안의 것을 꺼내어 눈앞에 펼쳐보고 싶을 뿐이다.

나도 알고 싶어서.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렵다. 몰입이 심해 몸을 망치고, 주변도 불편하게 만들 테니까. 그런 시간을 오래 살아왔으니, 그 ‘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글쓰기는 업도, 숙제도, 인사말도 아니다. 명분도 이유도 없는 글쓰기.

이 ‘없음’이 참 여유롭다. 비어 있는데도 이상하게 꽉 찬 느낌. 아, ‘텅 빈 충만’이 이런 건가.


이 상태, 이대로가 좋다. 작가가 아니어도, 꿈이 없어도, 나는 이렇게 쓸 수 있으니까. 브런치가 이런 공간과 기회를 줘서 고맙다.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놀랍다. 이벤트 주제인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과는 다소 어긋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맘대로,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내 안의 글자들을 만나는 이 시간이, 나에겐 진짜 꿈 같다. 변화하는 내가 신기하고,

내가 아닌 것 같아 더 좋다.

이쯤이면 ‘글병’도 말기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는다. 7만 브런치언과 200만 서포터가 있는 브런치의 기운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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