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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맨 Apr 16. 2024

착한 손

신체 자신이 하는 가장 놀라운 위로는 신체의 일부인 '손'이 담당한다.손은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가장 발달한 도구이지만,물건을 조립하거나 운반하는 실용적인 일만 하진 않는다.악수하고 끌어안으며 타인을 만난다.최초의 에로스는 손으로부터 시작한다.손을 잡으며 모든 마술적인 일들이 일어난다.무엇보다 이 손은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이다.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칭찬한다.지친 애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칭찬한다.강아지나 고양이같은 동물들을 쓰다듬으며 그들이 사랑받고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중에서


이 글을 읽고 '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침 오늘 아침에 본 유투브 쇼츠에서 어느 외국의 지하철 안에서 넉살좋은 대형견 한마리가 이리저리 손님들에게 꼬리를 치며 다가가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그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강아지의 등과 머리를 잔뜩 미소를 띤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 개는 사람들의 '손길'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걸 아는지 꼬리펠라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내가 누굴 쓰다듬어준 적 있나 생각해보니 남편이다.요즘 집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며 숙제하기싫은 초딩처럼 한숨 푹푹 쉬는 남편의 머릴 어젯밤에 쓰다듬어줬다. "힘들지?넘 피곤하면 걍 잠을 좀 자지 그래?"하며,머릴 쓰다듬는데 어젯밤에 머릴 안감았는지 기름기가 잔뜩이다.그래도 넓은 아량으로 참는다. 기름진 사랑이다.

나는 가끔 위로받고 싶거나 칭찬받고 싶을 때 남편에게 '내 머릴 쓰다듬어 줄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남편은 내면에서 절대 우러나오지 않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마구마구~ 내 머릴 쓰다듬어주는데(쓰다듬기보다는 '마구 땡겨넘기기'에 가깝다),그거라도 어디냐,쓰다듬 당할 때 기분이 참 좋다. 시린겨울 피부를 감싸는 솜이불처럼 포근하고 안심되는 기분.


  에로스의 시작이 손이라는 점도 공감한다. 연애초반 ,손을 잡을까말까하며 새끼손가락이 썸을 타는 순간의 에로틱함이란.

예전에 어느 영화지 기자님이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에로틱한 영화 속 장면은 영화 <순수의 시대>(감독 : 마틴 스콜세지) 의 한장면이라고 한 적이 있다.<순수의 시대>에서 약혼녀가 있던 아처(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새로운 연인 엘렌(미셸 파이퍼)이 헤어질 결심을 하고 함께 탄 마차 안, 아처는 주저하다가 엘렌이 낀 장갑을 벗긴다. 장갑 안에 숨겨진 흰손이 보인다.엘렌의 손목에 남자는 애틋하게 키스한다.(이 장면들은 클로즈업된다)

과연,어떤  애정씬보다 에로틱하다.


(영화 <순수의 시대>스틸컷)


한편,다른 손도 있다.아주 예전에 방송작가협회 드라마 작가반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강의했던 모 작가샘이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는데,'당신이 태어나 지금까지 누군가의 뺨을 때린적이 있느냐'라

라는 질문에 이어,누군가의 뺨을 때리는 것은 ' 전혀 일상적이지 않다'며 한국 드라마마다 등장하는 ' 뺨 때리기'장면의 남용을 경계하라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뺨을 때리는(거의 휘갈기는) 장면은 다 드라마에서 본 듯했다.그것도 여자가 연적인 여자를 때리는 장면말이다.예능에 나온 배우들은 종종 어떻게해야 뺨을 더 잘 때릴수 있는지 시연까지 하곤한다.킬킬거리며.

진화한 버전은 김장김치로 뺨때리기가 있다. 나는 이런 장면이 거침없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않는다.마치 내 정서가 갈굼당하는 기분이랄까.  

'쓰다듬는' 손의 반대지점에 있는게 '뺨을 때리는'손이 아닐까.(갑자기 기분나쁜 기억이 소환된다.

중딩 때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을 한 50m쯤 가로지르다 같은 운동장을 쓰는,물론 처음 본 초등학교의 한 남자 선생이 나를 불러세웠던 적이 있다.그 선생은 "왜 운동장에서 실내화를 신냐?"고 소리치면서 다짜고짜 내 뺨을 세게 때렸다.뺨을 맞아본적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중년이 된 지금도 그게 중학생의 뺨을 때릴만큼 큰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최상의 손의 위로는 어느 추운 겨울,누군가가 내 차가운 맨 손을 잡아 온기가 남은 주머니 속에 쓱 넣어줄때의 따뜻한 설레임,이었던 것 같다.그 기억을 붙들 수 있다면 조금 견딜만한 인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내 삶에 가운데 손가락보다 엄지 손가락 들 일이 많길,그리고 내 손이 누군가를 밀치고 때리기보다 쓰다듬고 토닥거리며 안아주고 손뼉쳐주는데 많이 일하기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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