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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맨 Mar 29. 2024

주름이 죽기보다 싫어서.

한달여전 쯤 온라인공간에서 많이 본 글 중 하나가,"보아 연기 왜그래?"를 가장한 "보아 얼굴 왜그래?"였다. 나는 보아가 출연하는 문제의(?) 그 드라마(<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이 드라마 속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닌 보아는 어떤 이유에서건 얼굴이 좀 변해보이는 건 사실이었다.입술의 모양이나 움직임도 자연스러워보이지 않았다.하지만,그녀가 무슨 시술을 어떻게 했는지 추정하고 광적으로 집착하며 마침내 연기가 아니라 '얼굴이 문제',라며 댓글과 대댓글로 땅땅! 판결하는 행태가 참으로 가혹하고 기괴해보였다.


지난해 방영된 어느 드라마의 여주는 (그 여배우는 확인해보니 40대 중반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은끝에 대기업 임원까지 된 대단한 커리어우먼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모공과 주름이 모두 뽀샵처리되어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졌다.그저 주름살이라곤 하나없이 뽀얗기만 한,도저히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 얼굴에서 고군분투하는 커리어우먼의 고단함을 읽기는 힘들었다. 요즘의 트렌드가 배우들이 직접 시술을 하는데서 더 나아가 제작진들이 알아서(혹은 배우들의 적극적인 요구로) CG를 통해 더 젊어보이게 만져주고 있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나는 보아가 성형이나 시술을 했다면,왜 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CG를 동원한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나라는(외국도 별다를바 없겠다만)  가수,배우등 연예인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가도 '늙은 얼굴'이 거의 죄악시 되는-  주로 '관리'를 안했다는 죄명이고,여기서 관리는 '(성형)시술'을 말한다- '동안 만능주의' 사회다.

특히나 잘생긴 남자배우들의 '나이듦'에는 주로 '중후해졌다'란 말이 따라붙지만 '젊고 예뻤던' 여자배우들의 나이듦에는 가차없이 '늙었다','관리 안한다'라는 비난이 폭주하는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많은 연예인,특히 여자 연예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심한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여자 배우들이 선택하는게 보톡스,필러,리프팅등의 (상대적으로 간편한) 시술이다.

이것도 자연스럽게 시술이 잘 되면,'관리 잘했네'소리 듣지만,설사 시술이 잘못되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변해버리기도 하니,잔인하기 그지없는 복불복이다.


가령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그는 72년생.51세다)는 자기보다 서너살 어린 40대 후반의 백수 성기훈을 연기했다.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처지고 주름진 얼굴이어서 훨씬 현실감이 있었다.

<서울의 봄>의 정우성(그는 73년생,52세다) 역시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남은 얼굴로 당시 48세의 장태완 장군역에 200%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그가 보톡스나 시술로 주름을 없애고 땡겼다면 장태완의 고뇌가 표현될 수 있었을까 .

하지만,이정재나 정우성이 '자신있게' 시술을 선택하지 않을수 있었던 건 상대적으로 남자배우들에게 '관대한'사회적 시선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OTT  '웨이브'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이라는 범죄 스릴러를 본 적 있다.케이트 윈슬렛은 작은 시골마을의 형사로 나오는데,(그녀는 75년생,49세다) 분장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푹 꺼진 눈과 깊이 팬 팔자주름으로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우울한 이혼녀이자 피곤과 불면에 찌든 형사의 현실얼굴로 등장한다.처음엔 나도 모르게 '와,케이트 윈슬렛 나이 많이 먹었네..'라고 생각했다가,곧 그녀의 '나이먹은'얼굴에 빠져들었다.


                                 (HBO드라마 <메어 오브 이스트 타운>의 케이트 윈슬렛)



케이트 윈슬렛은 자신의 주름을 사랑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패션 잡지 GQ가 자신의 몸을 포토샵으로 날씬하게 수정해 배포하자 "사진속 몸매는 내 진짜 몸매가 아닌데 왜 허락 없이 수정했냐" 라고 항의해 잡지사에 소송을 걸었고 기어이 사과를 받아냈다.

또한 2015년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주름살, 뾰루지가 그대로 드러난 자신의 화보를 업로드 한 뒤,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겨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오늘 나는 메이크업을 지운 내 사진을 올립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이 사진을 통해 주름 그 이상의 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진짜인 나를 포옹할 것이며, 여러분 또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배우들의 경우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역할이 현저히 적고 주로 주연급 역할은 젊은 여자 역이 많다보니 나이를 먹어도 어느 정도 젊게 시술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인정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보톡스로 마비된 근육은 표정연기를 불가능하게 하여 스스로 연기수명을 갉아먹는 일이 아닐까 .

이에 덧붙여 유독 '여자'들에게, '여배우들'에게 몇천 몇만배는 더 가혹한 전사회적 '동안'의 압박을 멈췄으면 좋겠다. '놓치지 않을거에요~ '가 아니라 이제 좀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


    나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어가는'것을 두려워한다.늙은 것은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속을 파고드는 주름과 중력으로 인한 처짐을 황급히 메꾸고 끌어올려야할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온 깊이와 인간적인 어떤 표정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주름살 사이사이에 책갈피처럼 끼워진 타인의 역사를 읽어보면 어떨까.

그렇기에 ,여전히 유투브나 드라마,영화 등 미디어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 나이 먹는구나'라는 좌절감이 아니라 나처럼 나이들고 있는, 40대의 여자 50대,60대의 여자도 보고 싶다.나와 함께 나이먹어가는 얼굴을 보고싶다.그렇게 공감하고 때론 위로받고싶다.

서로에게 너무도 가혹한 세상 속에서 '늙음'에 대해 관대해지자,라고 감히 말하고싶다.


방금도 화장실 새하얀 형광 조명밑에서 내 적나라한 민낯을 보자니,눈이 절로 질끈 감겨진다.

하지만! 케이트 웬슬렛의 표현을 빌어본다.

' 진짜인 나를 꼬옥 ~ 안아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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