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앱 불매운동

신념대로 사는 것은 어렵다

by 럭키젤리

네덜란드에서 온 S는 독일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이다. IT 기업에서 커리어를 마치고, 독일에서 교사로서의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마치 퇴직한 친한 부장님을 보는 것 같을 때도 있어, 과연 한국인 기준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해보기도 했다. 여튼 그는 IT기업에 근무하면서 여러 나라를 출장도 다녀보고, 돈도 꽤나 벌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제2의 인생은 무언가 인류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퇴직 후 교사로서의 커리어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IT기술도 충분히 인류에 기여하는 기술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굳이 반문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본인의 생일 기준으로 WhatsApp(왓츠앱) 단톡방에 공지를 올렸다. 공지라기 보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생일을 기점으로 미국 제품들을 불매하기로 결심하였고, 그래서 더이상 왓츠앱, 인스타그램, 챗지피티, 구글맵과 같이 미국 자본의 앱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 기업들이 너무 권력적이고, (개인정보 등을) 상업적으로 오용하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에 사용하던 앱을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도 제시해주었다. 왓츠앱 대신 Signal(시그널), 인스타그램 대신 Mastodon(마스토돈), 챗지피티 대신 Le Chat(르챗). 대부분 유럽 기업에서 만든 앱들이었고, 혹여나 미국 자본이 참여한 기업의 경우에는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오픈 소스 기반 탈중앙화 기업들이었다. IT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그가 이렇게 IT기업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쨋든 그는 그렇게 왓츠앱 단톡방을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연락하기 위해서는 시그널 앱을 깔아야했다. 한국인들에게 시그널은 너무 생소했다. 어플을 깔고 보니 내 연락처에 저장된 수많은 사람들 중 전 직장 상사 단 한명만이 시그널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스톤돈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기업의 챗봇인데 과연 한국어 서비스도 제공할지 궁금해, 한국어로 말을 걸어보았다. 다행히 르챗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어째저째 그의 추천에 어플들을 깔긴했지만, 실제 사용하기에 손은 잘 안갔다. 르챗은 그래도 종종 이용해보긴 하였는데, 시그널과 마스토돈은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사실 어학원 단톡방에 이런저런 내용을 적을 때마다, S만을 위해서 시그널에 다시 한 번 내용을 전달하는 일이 조금은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S는 약속시간이나 장소를 잘못 인지하기도 해, 만남에 오류가 있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단톡방의 대화에서 그는 배제되게 되었다. 요즘 같이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그에 반하는 마음에 불매운동을 벌이는 마음은 이해하나, 그의 신념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도, 그의 친구들도 어느정도의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SNS는 더 그랬다. 나만 대안 어플을 이용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연결되어있는 많은 친구들도 함께 대안 어플을 사용해야만 SNS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시그널과 마스토돈을 깔면 뭐하나. 거기서 연락하는, 소통하는 친구가 없는데... 그래서 S에게 너의 친구들은 어떻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자신은 이미 나이도 먹었고, 커리어도 한 번 전환했기 때문에 주위에 남은 친구들은 자신과 함께 미국 앱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같은 신념들을 가진 친구들이라, 다같이 대안앱으로 넘어오는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애초에 어쩌면 내가 그보다 훨씬 더 SNS 헤비유저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는 어느정도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의 신념을 지키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사람도 어느정도 불편함을 느끼긴하지만...ㅎ) 그런데 한편으로는 S의 행동이 강단있게도 느껴진다. 나는 크고, 작게라도 신념을 실천하는 것을 늘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늘 욕망 앞에서 신념을 저버리는 일들이 많았다.


일론 머스크의 일렬의 행보들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트위터(X라고는 여전히 입에 잘 안붙는다)는 열심히 스크롤하며, 남편은 테슬라 주식을 차근차근 모으는 중이며, 그래서 가정의 자산 증대를 위해 테슬라의 주가 상승을 기원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이 거의 내 모든 생각을 염탐하는 수준의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상품을 추천해줄 때면, 내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털린 것인가 불쾌하면서도 추천 받은 상품의 구매링크를 눌러본다. 한참 챗지피티의 지브리풍 사진 변환이 인기가 끌 때, 저작권을 문제삼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장인정신이 폄하될까 우려하고, 내 얼굴 정보까지 넘기는 것인가 걱정하며, 그 열풍에 전혀 동참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어학공부하는데 있어서는 챗지피티만큼 좋은 학습툴을 찾기도 어렵다. S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나 또한 여전히 동감하면서, 그렇지만 나는 내 편의와 안녕(?)을 위해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플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역사인식과 독도문제, 오염수 등에 저항하기 위해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할 때 나름 열심히 동참했다. 사실 나는 결혼 전 해외여행을 엄청나게 다녔던 것에 비하면, 일본은 거의 간 적이 없었다. 굳이 내가 열심히 번 돈을 일본 내수 소비 진작에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컸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한국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일본문화은 최대한 즐겼으며, 결국 (남편의 염원으로) 신혼여행을 일본으로 다녀오게 되어, 그곳에서 역대급 소비를 하기도 했다.


예전에 한 신문 기사에서 인간으로 인해 등이 굽은 명태이야기를 본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동해안에서 명태 어획량은 줄어가는데, 한국인의 명태 소비는 계속 이어져, 명태 양식을 연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양식 연구장의 연구 대상인 명태가 물이 빙빙 돌아가는 수조에서 워낙 돌다보니, 원심력에 의해 등이 굽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이 기사는 정말 옛날 기사로 지금은 명태 양식 기술 개발 자체는 성공했지만, 아직 상업화는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인간으로 인해 등이 굽어버린 생선이라니. 뭔가 처연하고도 서글프게 느껴져서 가급적 명태를 먹지 않도록 노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술마시고 난 다음날 생태탕은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여간 강한 신념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넷플릭스 다큐 "시스피라시"를 보고도 그랬다. 무자비한 대량 어획에 반하는 길은 채식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다큐를 보고서, 환경과 생태계를 크게 걱정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채식주의자들이 흔하고, 채식 메뉴도 잘 되어있는 독일에서도 우리 집 밥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라온다.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다회용품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청소에는 강박이 있어 집안일을 할 때 정말 다양한 화학제품을 쓰고 있다. 그나마 신념을 지키고 있는 단 한가지라고 하면, 옷을 적게 사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어딘가에 썩어가는 의류들을 보며, 더이상 옷을 많이 사지 않겠다라고 결심한지 그래도 몇 년이 된 것 같다. 다행히 올해 목표 중 하나인 옷 5벌 이하 구매하기는 아직까진 잘 지켜지고 있고, 재활용 의류 옷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신념을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안다. 내가 이 목표를 그나마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이미 사놓은 옷이 많기 때문이고, 독일에서는 별로 깔롱 부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이 신념을 또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욕망이 우선되는 사회에서 욕망과 편의를 억누르는 신념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환경을 생각한다고, 지구를 생각한다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한다고, 중앙화된 권력에 반하겠다고,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내보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이 신념대로 내 생활 습관을 다 바꾸는 것은 의외로 엄청난 결단과 강단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이렇게 이상만 가지고 떠들고, 실천을 안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위선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아, 이 것은 위선은 아니라고 반박해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위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신념대로 사는 것은 불편하고, 욕망을 억제해야한다. 이미 편의와 유혹에 길들여진 내가 위선을 버리고, 신념대로 행동하려면 금단증상을 겪으면서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피나는 노력 없이 겉으로만 의식있는 사람인 척 보여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그건 진짜 아닌데, 진짜 환경 같은 사회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맞는데, 더디게 실천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적어도 위악보다는 낫지 않겠냐며 약간의 자조적인 위로를 할 뿐이다. 거참. 신념대로 살기 어렵다.





ps.

S의 미국 앱 불매운동의 대안앱으로 거론된 앱들이 왜 다 유럽 앱들인지 IT 강국 한국 출신인 나로서는 너무 안타까웠다. 안그래도 외국인으로서 한국 여행이 어려운 점으로 우선순위에 꼽는 것이 폐쇄적인 어플 환경이라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구글맵을 안 쓰는 나라, 왓츠앱을 안 쓰는 나라, 우버를 안 쓰는 나라. 네이버와 카카오로 대표되는 거대한 자국 앱 환경이 탄탄하기 때문에 외제 어플을 쓰지 않는 점은 나름 자랑스러운 포인트이지만 (물론 네이버와 카카오 또한 거대 자본 지배구조임은 여기서 굳이 짚지는 않겠다.), 왜 이런 한국 어플이 세계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지는 안타까웠다. IT강국이라고 불리려면, 적어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어플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단순히 무지 빠른 인터넷 환경만이 IT강국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닐텐데 말이다. 미국 앱 불매운동의 대안앱이 카카오톡이 되었다면, 네이버 지도가 되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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