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하면, 엄마는 여자로서 참 불쌍했다. 아이들은 나 몰라라 허구한 날 바깥을 돌던 아빠. 남녀 간의 정서 교류는 없었다. 엄마는 그저 홀로 가만히 낯선 곳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아이를 키워내기 벅찼다.
본래도 심지가 단단하지 못했던 엄마는 그렇게 방치됐다. 아직도 기억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안을 쓸고 닦던 엄마의 뒷모습. 흙먼지 한 톨도 집안으로 들어오는 걸 용납지 않았다. 흙이 묻은 발로 집안을 내딛는 순간 걸레로 맞았다. 아마 그녀는 깨끗한 집에서 본인의 자아를 찾았을 거다. 거의 유일한 낙이자, 존재의 이유였을 테니.
집안일을 하는 동안 엄마는 물 컵에 소주 한 잔을 가득 따라 마셨다. 그리고 집안일이 끝났을 때는 취기에 잠들었다. 그 시간 나와 동생은 숨죽여 둘만의 소꿉놀이를 했다.
그렇게 술에서 깬 엄마는 또 집안일을 시작했다. 하염없이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그렇게 간만에 아빠가 집에 올 때면, 엄마는 그간 쌓였던 감정을 툭툭 내뱉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무시했다. 혹은 집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며 싸우곤 했다. 싸움이 끝나면 아빠는 또 몇 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엄마는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는 집안일을 모두 다 내팽겨 치고 술독에 빠져 담배를 태웠다. 나를 붙잡고 한참을 아빠에 대한 험담을 했다. 감정 쓰레기통 마냥 가만히 엄마의 감정 쓰레기를 받아냈다.
아빠는 엄마에게 줄 모든 관심과 애정을 내게 쏟았다. 자신과 복사 붙여 넣기 수준으로 닮아서였을까, 아빠는 내게는 최선이었다. 본인의 취미인 스킨스쿠버를 나설 때도, 사냥에 나설 때도 항상 내 손을 붙잡고 “허허”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하던 아빠가 기억난다.
아빠의 집중된 사랑은 매질로 돌아왔다. 엄마에게 난 딸이 아닌 여자였다.
‘여시 같은 기지배.’
‘너 낳고 나서 아빠랑 멀어졌다.’
‘지우려고 오만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던 독한 것.’
폭언을 내뱉는 엄마에게, 별 것도 아닌 것에 쉬이 매질을 하는 엄마에게 너무나 상처받았다. 그 상처는 애정결핍으로 돌아왔다.
사랑의 원천인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끝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애정결핍이었던 난, 너무나 쉽게 사람에게 정을 주고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졌다. 이런 불완전한 모습은 뿌리가 단단한 아이들의 눈에는 금방 들통났다.
기본 정서가 완전한 아이들은 나의 이런 불완전한 모습을 보고 이내 떠나갔다. 떠나가는 그들을 붙잡기 위해 매번 바닥 끝가지 나를 몰아붙였다. 그러면 돌아올 줄 알았다.
끝끝내 진짜 이별인 걸 깨달을 때면 또다시 사랑을 줄 상대를 찾아 헤맸다. 엄마를 보며 ‘난 남자 없이도 잘 살 거야.’를 다짐했던 걸 까맣게 잊고 매번 그 공허함과 애정을 남자들에게 찾아댔다.
몇 번의 이별 후 더는 상처받기 싫었다. 이에 싸움이 날 것 같으면 먼저 이별을 고했다. 정상적인 연애였다면, 내가 완전했다면 그들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려 노력했을 텐데 내게 갈등은 곧 이별이었다.
그렇게 쉬운 연애를 몇 번쯤 반복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와도 쉬운 연애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연애는 100℃로 시작해 점차 80, 70, 60℃로 내려갔었는데 그는 시작이 70℃였다. 처음엔 헷갈렸다. 그저 여색을 즐기기 위해 날 만나나 두려움도 컸었다. 그는 싸움에도 최선이었다. 서로 갈등이 번졌을 때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울고 불며 상황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내 감정에 공감하려 이해되지 않는 감정선은 10번이고 되물었다.
그렇게 1년 2년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70℃다. 변화가 없는 그의 애정에 언제나 미지근한 듯 일정한 그의 사랑에 나 역시 변했다.
더는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더는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날 갉아먹지 않는다. 갈등이 이별이 아닌 관계의 성숙임을 알았다. 관계의 성숙을 위해 갈등을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