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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Feb 21. 2024

내부고발을 망설인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는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문제를 제기해 해결을 하려 했었다.


성추행을 당했던 날도, 나와 똑같이 당한 이는 그저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끝냈지만 나는 112 버튼을 누르고 버스를 봉쇄했다.


결과는? 버스 탑승객들에게 욕을 먹었고, 검찰은 용서하라고 강요했으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범죄자는 검찰 내에서 작성한 서류에 적힌 내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내왔다.


결국, 범죄자에게 얼굴을 각인시켰고, 전화번호를 유출해 번호를 바꿔야만 했다.


회사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첫 번째는 회계 담당자와 연인 사이였던 이의 출장비 부정 청구였다.


그는 회사 앞 우체국을 갈 때도, 집회 신고를 갈 때도 법인 카드로 택시를 탔음에도 꼬박꼬박 출장비를 받아갔었다.


반면, 정말 출장이 많았던 우리 부서는 교통비 지급이 불가하다는 회계 담당의 말만 믿고 교통비 역시 사비로 지출해야 했었다. 출장비도 당연히 청구가 불가했다.


부조리하다 생각했다. 이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됐지만, 난 왕따가 돼야 했다. 그때는 그들이 틀렸다 생각했다. 그래서 괜찮았다. 결국엔 퇴사를 했지만.


이후에는 상간녀였다. 사내 불륜을 비롯해 회사 비품을 훔치고 업무 태만을 일삼으며 사내 왕따를 주도했던.


물론 불륜으로 회사에서 퇴사를 시킬 순 없다. 차마, 적지 못한 상간녀의 만행이 너무나 많지만 회사는 어찌 손을 쓰지 못했었다. 결국 이런저런 증거를 모아 회사에 갖다 바쳤고 그렇게 그 역시 정리됐다.


그 과정에서 날 싫어하던 팀장이 데려 온 사람 역시 공범으로 잘려나갔다. 그 이후 내게 돌아온 건 알 수 없는 팀장의 괴롭힘이었다.  당당하니까 견뎠다. 오히려 회사를 위해 정말 많은 일은 한 건 나라고 믿었기에.


그다음 회사는 횡령이었다. 지금까지 사건들과 달리 사이즈가 달라 무서웠다. 하지만 결국 내 마음속 양심은 그만두더라도 알리고 그만 두자였다.


이번에는 꽤나 상식적으로 일이 처리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역시 그 모든 사건들이 처리되고 사내 정치판까지 정리되자, 그다음 정리돼야 하는 건 나였다. 자신들의 법카 부정 사용, 그리고 부장급 임금 삭감을 위해 자신들이 한 거짓말 등을 감춰야 했으니까.


이를 안다면 나는 문제 제기할 아이니까.


이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느낀 바가 있다. 정말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면 내 마음속 양심은 죽여야 한다는 걸. 누군가 내게 내부 고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말할 거다.


절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세상은 생각보다 공정하거나, 상식적이지 않다고. 공정하거나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 모든 칼 끝이 너를 향할 거라고.


고작 너 하나의 외침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저 잘 편승해 살아가는 게 현명한 거라고.


이런 일을 계속 겪으며 한동안 아빠를 원망했다. 항상 당당할 수 있게,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했던 그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정말 내가 이 세상에 잘 적응하길 바랐으면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다.


남의 일에 절대 신경 쓰지 마라, 세상에 공정을 바라지 마라, 정의롭다고 생각한 행동을 하는 순간 너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힌다. 그저 너는 너의 것만을 생각하며 너만의 이익을 바라보고 가야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이들이 참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날의 흔적을 돌이켜보니 그들이 현자였다.


나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섰던 그 모든 순간을 후회한다. 인생에 사이다는 없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너무나 평범한 갑순이가 사이다를 바란 것 자체가 건방이었음을.


이로써, 한동안 글도 쓰지 못할 만큼 괴롭고 아팠던 시간을 보낸 나는 결심했다.


앞으로 난 그 어떤 부조리에도 눈 감고, 귀 닫고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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