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무기인 사람이고 싶다.
지금 나는 8kg 감량에 성공했다.
식단은 자신이 없었다. 항상 식단을 병행한 다이어트는 식단을 전환하자마자 실패로 돌아갔기에. 식단을 포기하고 정말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요가를 나갔다. 그 결과 8kg의 체지방을 떠나보냈다.
안 그래도 유연하지 않은 몸은 요가를 갈 때마다 찢어지다 못해 뜨거운 느낌이 들 정도의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백수가 살까지 찌면 그건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또 정적인 운동이라 생각했던 요가는 유산소의 끝판왕이란 것을 깨달았다. 무한 버피. 수리야나마스까라라는 이름의 버피를 무한으로 하며 이렇게 땀을 흘리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땀을 흘려보냈다.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뻣뻣하게 굳어있던 어깨가 풀렸고 잡히지도 않았던 발목이 이제 내 손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꾸준함이 답이었구나. 무슨 일이든 꾸준하게 한다면 속도가 느릴지라도 달라지는 구나를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문득 글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돈을 대가로 쓰는 글은 쓰기 싫어도 어떻게든 써냈던 나인데 나를 위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웹소설은 정말 어려웠다. 이런저런 형태의 글을 써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웹소설이 가장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마저 들 만큼.
한동안은 슬럼프 아닌 슬럼프도 왔었다. 함께 글을 쓰던 수강생이 있었다. 그는 은, 는, 이, 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였다. 안쓰러움 반, 응원하는 마음 반이었다. 반면 나는 항상 칭찬받는 수강생이었다. 강사님들은 내 필력을 칭찬했다. 내 스토리를 칭찬했다.
그런데 투고 결과는 달랐다. 나는 처참히 실패했고 그는 출판사와 계약했다.
문장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던 이는 투고에 성공하고 나는 떨어졌다. 사실 칭찬을 받을 때마다 으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글로 밥 벌어먹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웹소설 시장은 다르게 판단했다.
그때 잠시 글을 멀리했다.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비극.’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잘하지 못하는 걸 잘 해낼 수 있다고 스스로 세뇌를 한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글을 내려놓았다.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남편에게는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며 동굴로 들어갔었다. 그러다 문득 웹소설 강사님께 연락이 왔다.
글은 쓰고 있냐며, 나만 괜찮다면 자신과 온라인으로 첨삭하지 않겠냐는 연락이었다.
그는 내가 학원을 또 다녀봤자 더는 배울 것이 없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저 열심히 쓰기만 하면 된다고 다독여 줬다. 그리고 내 필력을 인정해 줬다.
돈이 아닌 서로의 글을 봐주는 관계를 제안해 준 그가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나 쉽사리 글을 쓰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잘하지 못하는 걸 하고 싶다는 이유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두려움 속 나를 기다려 주는 강사님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어렵게 책상에 앉아 글을 써 내렸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리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간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 재능에 대한 고민을.
그는 정말 감사하게도 그저 담담히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 해준 말이 작은 울림이 돼 돌아왔다.
“갑순 님은 글을 진짜 잘 쓰고 매번 나아져요. 그런데 그분과 다른 건 꾸준함이에요. 그분은 하루도 쉬지 않으셨어요. 제가 아는 한.”
꾸준함.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꾸준함은 결국 빛을 발한다는 것을.
두려웠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애정을 들였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작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결과가 내가 생각한 성공이 아닐지라도 어떤 것에 대해 쏟은 시간은 어떻게든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한 100자라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