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나는 카드사의 AI서비스팀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카드사에서는 챗봇 카피라이터로 들어가 챗봇의 답변을 페르소나 별로 수정하고 챗봇 로그를 분석해 오류 찾는 일을 했다. 그 일은 내 적성에 맞고 즐겁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시를 더 잘 쓰고 싶어졌다.
시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예술이었고, 나는 삶을 예술로 채우다가 결국 삶을 예술로 만들고 싶었다. 시 합평 모임에 1년 정도 꾸준히 참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화장실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시를 두들기는 쪽잠 같은 시간이 아니라 충분히 사색하고 충분히 공부한 뒤 끈질기게 하나의 시를 고쳐서 완성시킬 수 있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두 달 정도를 고민하다 퇴사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주 평일 오전에 열리는 시 수업을 들었다. 미뤄뒀던 시집을 읽었다. 그 와중에 영감을 얻기 위해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는데, 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보면 홀리듯이 그것 앞에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다. 어떨 때는 경이로웠고 어떨 때는 아득해졌다.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묘하게 일렁였다. 전시를 좋아하게 되니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하지만 큐레이터가 되려면 관련 전공의 석사와 해외 유학은 기본이었다. 동경하게 된 직업이었지만 절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단숨에 접었다.
그런데 우연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아래의 공고를 발견한 것이다.
가슴이 콩콩거렸다. 사적인 관계를 주제로 800자 이내의 글을 키워드 3개와 함께 제출하는 방식의 블라인드 선정이라니. 심지어 경력과 연령 국적 또한 무관하다니. 한국어만 필수로 하면 된다니. 나를 위한 공고 같았다. 유관 경력 없이 내가 동경하던 직업을 '협력큐레이터'로 경험해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다. 또, 나는 글쓰기에 자신 있었고, 매번 내가 천착하는 주제는 관계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800자 정도야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 나는 공고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글을 써 지원했다.
그때 제출했던 사적인 관계에 대한 글은 이렇다.
그들은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금전적 이득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사적인 관계다. 반면 직장과 같이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공적인 관계다. 그들은 직장 내에서 통용될만한 이야기들을 한다. 업무를 처리하고, 급여를 받는다. 이렇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성격과 만남 장소를 기준으로 관계를 구분할 수 있지만 관계가 늘 명확한 두 가지로만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유동적이고 복합적이며 때로 모호하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관계의 공존.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의 변모. 사적인 관계는 끝났지만 공적인 관계는 유지할 수 있는 정당함 등등. 우리는 여러 관계를 지켜보고, 그 관계들로 얽혀있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때로 모호한 관계들은 이해받지 못한다. 여러 가지 논의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는 사람들도 언젠가 한두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혹은 살면서 한 번쯤은 맺을 것이다. 우리가 한 번도 갖지 못했고, 그리하여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관계란 없다. 특히 타자의 사적인 관계를 파고들수록 우리는 그 관계를 통해 보는 모습이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내밀하게 내 것을 내어준 상대에게 한 번 이상 무너져 본 적 있다. 지켜야 할 것을 기어코 어겨본 적이 있다. 우리는 그 상대만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삼켜야만 하는 말들을 바로 뱉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며 자문하고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선정한 키워드는 복합, 모호함, 이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하면 재밌게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지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지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협력큐레이터에 선정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때 혼자 노을이 지는 길을 걷고 있었는데, 문자를 받고 다시 가슴이 콩닥거렸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 하늘은 모네의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언제나 처음은 좋은 것이다. 앞으로의 고난을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