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을 관찰하는 법

by 한수아

나는 때때로 꿈속에서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이는 보통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이나, 이전에 꾼 꿈의 서사가 연속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자각몽의 상태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나는 대개 그 흐름을 억지로 끊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이탈할 수 있지만, 감각적으로는 그 세계에 머물고 싶어진다. 전개가 흥미롭고 구조가 정교하며 무엇보다 현실보다 훨씬 높은 밀도의 시각적, 정서적 질감을 갖기 때문이다.


꿈은 종종 현실보다 완성도가 높다.

자연이나 인공물의 형상은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인 동시에, 강한 미적 통일성과 몰입감을 지닌다.

건축물은 AI가 시뮬레이션한 듯 비현실적이면서 정교하고, 풍경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감광도를 지닌 색채로 구성된다.

나는 그 안에서 주체적일 때도 있지만, 상당수의 경우 전혀 다른 인물의 삶을 살아간다. 현실의 나는 단일한 자아지만, 꿈속의 나는 다중적인 정체성을 순환한다.


1년 전쯤, 꿈속 자아의 80% 이상은 ‘타인’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영국의 여왕으로 존재했던 꿈이다. 식사 때마다 누군가의 암살을 경계했고, 오직 전담 요리사가 직접 건넨 음식만을 섭취했다. 전달받은 문서는 한 단락씩 반복해서 정독해야만 했다.

모든 장면에 긴장과 통제가 내재돼 있었고, 나라는 인물은 경계와 불안이라는 기조 위에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만큼은 전혀 달랐다.

통제를 내려놓는 유일한 장면,

경계와 예측, 반복과 의심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나는 처음으로 해방과 평온이라는 감각을 경험했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구조적 긴장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시퀀스였다.


이런 경험은 꿈이 단순한 무의식의 파편이 아니라, 또 다른 인식의 플랫폼이라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실이 하나의 자아, 하나의 서사만을 허락하는 공간이라면, 꿈은 자아와 세계를 재조합하고, 다층적인 정체성과 감정을 실험할 수 있는 확장된 실존의 장이다.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아닌 나’를 살며,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감각과 사유를 획득한다. 심지어 그 죽음마저도, 현실보다 덜 두렵고 더 서정적이다.


꿈의 세계는 종종 논리적 일관성을 결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과 인식의 측면에서는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어쩌면, 꿈이 우리가 현실에서 억제한 충동과 가능성(삶의 비가시적인 측면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꿈은 회피가 아닌 탐색이다.

그 안에서 나는 단일한 정체성을 넘어, 정서적 구조, 존재론적 변형, 인식의 다층성에 이르는 여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꿈은, 매일 아침 내가 깨어나는 ‘나’를 조금씩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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