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여전히 명품이 없는 이유

가격은 가치를 보증하지 않는다

by 홍푸앙

2017년, ‘명품의 나라에 명품이 없다’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살면서도 정작 그 명품들을 일상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경험은, 내가 익숙했던 한국의 소비 풍경과 대비되며 커다란 의문이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글을 쓴 지 어느덧 8년이 흘렀다. 프랑스에서의 삶도 이제는 익숙해졌고, 그 사이 내 시선도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프랑스인들의 검소함이 생경하게만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 담긴 철학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여전히 거리에서 명품을 든 프랑스인을 마주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물론 파리 한복판이나 국제적인 전시회장 등 특정한 공간에서는 명품을 착용한 프랑스인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좀처럼 그렇지 않다. 직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 동네 시장과 카페, 공원 벤치 위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는 화려한 브랜드보다 견고한 품질과 실용성이 우선된 선택들이 눈에 띈다.


그동안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팬데믹은 전 세계인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고, SNS는 소비를 과시하는 문화를 가속화했다. 억눌렸던 욕구는 ‘보복 소비’라는 이름으로 분출되었고, 명품 브랜드들은 이를 기회 삼아 가격을 수차례 인상했다. 희소성이 프리미엄 가치를 더욱 강화시키며 일부 국가에서는 명품 매장 앞에 줄을 서는 것이 다시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명품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도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명품 매장이 즐비하고 관광객들의 긴 줄이 이어지지만, 그 줄의 대부분은 외국인들이다. 다양한 국적의 소비자들이 줄을 서 있는 옆에서, 프랑스인들은 무심하게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즐긴다. 프랑스에서 명품 소비는 ‘할 수 있음’보다 ‘굳이 하지 않음’에 가깝다. 이는 단순히 절약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에게 맞는 소비를 중시한다. ‘갖고 싶은 것’이 아닌 ‘정말 필요한 것’에 가치를 둔다. 물건을 살 때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삶에 이 물건이 정말 필요한가?”, “이것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가?” 소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주체적인 결정이자 표현이며, 그들의 선택은 철저히 ‘내적인 기준’에서 출발한다.


프랑스에서는 ‘새것’보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거리 곳곳의 골동품 가게와 수선 전문점들은 그 증거다. 낡은 책상이나 찻잔 하나에도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며, 세대를 이어 물려받은 가구나 식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래된 물건이 품은 시간을 잠시 맡아두는 것, 그 이야기를 존중하는 마음에 가깝다.


최근 프랑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윤리적 패션’과 ‘지속 가능한 소비’가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품 브랜드들도 이제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성을 브랜드 이미지에 포함시키려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의 본질적인 소비는 변하지 않는다. 유행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는 말처럼, 프랑스인들은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멋을 정의하고 실천한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마을 벼룩시장에 간 적이 있다. 시장을 구경하던 아내는 구석진 가판대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가죽 가방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양은 투박했지만 재봉선은 놀라울 만큼 견고했고, 가죽의 질감도 살아있었다. 아내는 주저 없이 그 가방을 샀고, 지금도 즐겨 사용한다. 그 가방을 볼 때마다 새삼 깨닫곤 한다. 누군가에게 소용이 다한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겐 평생을 함께할 가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인들에게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다.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소비란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구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이며, 개인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행위다. 소비의 기준은 타인의 시선이나 유행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방식과 필요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태도는 과시적 소비보다 실용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경계하고, 오래된 물건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이는 소비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삶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선택의 결과로 인식하는 철학적 태도로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프랑스에서 명품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물건의 상표를 구별할 줄 알았지만,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제품 보증서와 가격표에 새겨진 숫자들은 정품 여부와 가격을 보증할 뿐,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진정한 명품의 가치는 그 물건을 아끼고 고쳐 쓰며 함께 살아온 사람의 시간에 깃들어 있다.


8년 전, 나는 “명품의 나라에 명품이 없다”라고 썼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프랑스의 벼룩시장은, 시간이 벼려낸 명품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