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본고장 프랑스에 명품이 없었던 이유
명품의 나라에 명품이 없다고?
프랑스를 상징하는 이미지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샤넬, 에르메스, 입생로랑, 까르띠에, 크리스찬 디올…, 바로 명품 브랜드이다. 루이비통은 그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이다.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La Croix)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들의 매출액은 전 세계 명품 시장 매출의 ¼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명품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의 명품 매장 앞에서는 쇼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쇼핑객은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 주를 이룬다. 입구에는 보안요원이 서서 입장하는 사람들의 가방이나 소지품 등을 확인한다. 쇼핑객이 몰려 발생할 수 있는 도난 사고나 테러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더운 날씨에 짜증이 나거나 지루할 법도 한데,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매출 저하로 매장을 철수시켰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인들은 프랑스 명품시장을 먹여 살리는 '큰 손'이다. 파리의 유명 백화점이나 명품숍은 쇼핑을 하러 온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더불어 한국인 관광객들 또한 매출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다.
한국에서는 루이비통을 비롯한 해외 명품 브랜드를 착용한 사람들을 야외나 공공장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정품인지 짝퉁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루이비통이나 샤넬을 비롯한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매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루이비통 가방은 '국민 가방'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다.
믿기지 않겠지만, 지난 일 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명품을 가진 프랑스인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4년 전 프랑스에 한 달간 머물렀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실화냐고? 실화다. 프랑스인인 아내는 물론이고 가족들과 친척들, 지인들 모두 명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야외나 공공장소에서도 명품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명품의 나라에 명품이 없다니. 나중엔 루이비통이 국산 브랜드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명품을 모르는 사람들
프랑스 어학원을 다닐 적에, 프랑스인 선생님이 "한국인들은 프랑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한국인들은 프랑스 하면 예술과 낭만을 떠올린다"라고 대답했다. 더불어 "프랑스 하면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떠올린다"라고도 말했다. 선생님은 다소 의아해하며 자신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나도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명품을 안 좋아하나요?" 물론, 프랑스에서도 명품은 인기가 많지만,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명품을 부자들이 사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은 명품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도 명품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단다. 한국에서는 루이비통이 '국민 가방'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니, 선생님은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며 "한국은 정말 잘 사는 나라구나!"라고 말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가볍게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오래전, 아내의 생일 선물로 중저가의 지갑을 선물한 적이 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는 말을 했다. 아내는 고개를 저으며 그럴 필요 없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적당한 가격에 예쁘게 메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이면 충분하단다. 나는 아내가 내 기를 살려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아내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가방은 그저 가방일 뿐이라고.
프랑스인의 검소함
내가 프랑스인들에게 받은 공통적인 인상은 검소함이 생활에 배어있다는 것이다. 그저 돈이나 물건을 절약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생활과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추구한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불필요한 쓰레기는 되도록 만들지 않으려 한다. 음식은 언제나 적당량을 남김 없이 먹는다. 수도세가 비싼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인들은 물을 물 쓰듯 쓰는 법이 없다. 한국에 다녀온 프랑스인들로부터 들었던 공통된 말은 한국 사람들이 물을 너무 함부로 쓴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수도꼭지를 틀기가 무섭다.
이곳 사람들은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옷차림 역시 한국 사람들의 패션에 비하면 단조롭게 보일 정도다. 프랑스인들이 옷을 구입하는 시기는 일 년에 두 번이다. 여름과 겨울에 있는 바겐세일 기간이다. 철 지난 옷을 싸게 사서 입는 경우가 많다. 옷 스타일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수하고 검소하게 입는 편이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멋과 개성을 뽐낼 줄 아는 멋쟁이들이 많다.
프랑스인들은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을 바꾸지 않는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애착을 갖고 더욱 세심하게 관리한다. 프랑스의 골동품 경매장에 가면 백 년은 기본이고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볼 수 있는데, 매우 고가에 거래되곤 한다. 이렇듯 프랑스인들은 오래된 물건에 스며있는 시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인들은 중고 물건에 대해 무척 호의적이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빠지지 않고 자리하는 가게가 바로 중고 숍이다.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물건들의 상태도 최상급이다. 인터넷을 통한 중고물품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도 사기 사건이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양호한 상태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자동차 이야기를 하자면,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많은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프랑스 전역에서는 관리가 잘 된 멋진 클래식 자동차나, 당장 폐차장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낡은 차들이 명품 스포츠 카들과 도로 위에 공존한다. 도로 위를 달리는 멋진 차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마치 자동차 박물관에서 자동차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유와 관용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도 금기시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돈 자랑'이다. 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품을 두르거나, 함부로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은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까닭인지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부를 앞세워 타인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행동하는 부류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프랑스만의 문화가 아닌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기시되는 문화이다. 명품의 본산지인 유럽에서 돈 자랑이 금기시된다니 조금 아이러니 하긴 하다.
프랑스인들은 검소한 생활 방식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행복을 풍족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프랑스가 명품의 본산지라는 인식 때문에 그들의 검소한 생활 방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나니, 지금껏 프랑스를 왜곡된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하듯, 내가 만난 프랑스인들은 넘치는 삶 보다, 부족하지 않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명품의 본고장 프랑스에 명품이 없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