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일상에서 느끼는 여유
프랑스에 거주하며 가장 먼저 학습한 것은 나의 의지나 속도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한국에서 누리던 ‘신속함’은 이곳에서 더 이상 유효한 가치가 아니다. 행정 절차는 비합리적으로 느리고, 서비스 업종의 대응은 종종 무심하며, 일요일이면 도시는 멈춘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거 공간 안으로 들어오면 일시적인 안도감이 들지만, 문밖의 시스템은 여전히 완고하고 번거롭다.
이곳의 불편함은 물리적인 낙후함보다는 사회적 합의의 차이에서 온다. 노동자의 휴식권이 손님의 편의보다 우선시되고, 절차의 정당성이 결과의 신속함보다 무겁게 다뤄진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식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회선을 하나 연결하는 데 몇 주가 걸리고, 우편물이 이유 없이 분실되거나, 은행 계좌 하나를 여는 데에도 대면 예약이 필수인 상황은 현대 사회의 효율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였다. 분노는 대개 내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 상대를 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불편함이 불행으로 직결되지 않는 이유를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곳의 불편함이 나 한 사람만을 과녁으로 삼지 않는다는 보편성 덕분이었다. 모두가 평등하게 느리고, 모두가 공평하게 기다린다. 나를 재촉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를 위해 서둘러주는 사람도 없다.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속도가 뒤처지는 것이 곧 실패나 낙오처럼 느껴지지만, 모두가 함께 느린 이곳에서 기다림은 일상의 작은 여유가 된다.
불편함은 필연적으로 수고로움을 동반한다. 마트의 계산대에서 앞사람의 긴 대화를 묵묵히 견뎌야 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어도 상점의 영업시간에 내 일정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제약들은 삶을 다소 뻣뻣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내 감각을 외부로 향하게 한다. 모든 것이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환경에서는 내가 무엇을 소비하고 향유하는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오늘 무엇을 먹을지,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를 미리 계획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준비해야 한다. 삶의 주도권이 편리한 기술이 아닌 나의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돌아오는 지점이다.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서비스는 친절하기보다 건조하며, 때로는 투명할 정도로 솔직하다. 한국식의 과잉된 친절이나 매끄러운 응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건조함이 주는 해방감이 있다. 타인의 감정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고, 정해진 선 안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는 태도는 관계의 피로도를 낮춰준다. 불편한 소통을 거쳐 얻어낸 결과물은 그만큼의 무게를 갖는다. 서투른 언어로 권리를 주장하고, 긴 기다림 끝에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때 느끼는 효능감은 편리함이 주는 쾌적함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흔히 편리함의 결핍을 불행의 징조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편리함이 극대화된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정신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불편함은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 예기치 못한 변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타인을 증오하지 않는 법을 익힌다. 프랑스에서 보내는 일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인내를 요구하지만, 그 인내의 끝에 남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용과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이다.
물론 여전히 불쑥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날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업무가 지연되거나, 사소한 일로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면 한국의 효율적인 시스템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편리한 삶을 원하는가, 아니면 평온한 삶을 원하는가. 편리함은 외부 환경이 제공하는 것이지만, 평온함은 외부의 소란과 불편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태도에서 온다.
프랑스에서의 삶은 나를 결코 안락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번거롭고, 자주 기다려야 하며, 때로 막막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삶의 질감을 더 선명하게 느낀다. 매끄러운 유리 위를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거친 흙길을 밟으며 걷는 감각이다. 발바닥에 닿는 돌멩이의 감촉이 불편할지언정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불편함은 삶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양식이다. 이곳에서 나는 조금 더 느리게 걷고, 더 많이 기다리며, 더 자주 포기한다. 그러나 그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그리하여 나의 하루는 여전히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틈새 어디에도 불행이 깃들 자리는 없다. 담담하게 이 불편함을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것이 내가 프랑스라는 사회를 통과하며 얻은 가장 현실적인 삶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