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르타뉴인이다

프랑스에서 찾은 제2의 고향

by 홍푸앙

나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브르타뉴 사람(Breton)’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그것은 거친 바람과 푸른 바다가 공존하는 이 서쪽 지방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방인으로서 마주해야 하는 필연적인 고립감을 지역적 소속감으로 희석하려는 나의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왔다. 아무리 내가 브르타뉴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해도, 내 핏줄과 모국어가 바뀌지 않는 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가끔 묘한 방식으로 나를 품어준다. 길을 걷다 보면 불쑥 나에게 길을 묻거나 시간을 물어오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불어는 서툴렀고, 이 동네 지리조차 익숙하지 않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잘 몰라서요”라고 멋쩍게 대답하며 돌아서야 했지만, 그들이 나를 외지인이 아닌 이웃 주민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2024년 여름, 어머니를 프랑스로 초대했다. 어머니에게 나는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아니, 말도 안 통하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고생하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어머니의 걱정을 안도로 바꾸는 계절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 거닌 도시의 이웃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친절을 베풀었다. 콧대 높고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은 파리 사람들조차 어머니 앞에서는 무장 해제였다. 삼엄한 표정으로 관람객들의 가방을 샅샅이 살피던 미술관 보안 요원은 어머니를 친절하게 맞이하며 검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 그들의 친절과 배려 덕분에 어머니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의 출국을 위해 공항까지 동행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키오스크로 체크인을 하던 중, 실수로 인해 수하물 태그가 잘못 출력되었다. 나는 근처에 있던 항공사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황을 설명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불어를 그렇게 잘하세요?”


아마도 나를 귀국하는 한국인 관광객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입니다. 어머니를 배웅하러 왔어요.”


“그렇군요, 어디 사시는데요?”


“브르타뉴에 살아요.”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브르타뉴 어디요?”


혹시나 내가 사는 작은 도시를 모를까 싶어, 나는 조금 더 큰 도시의 이름을 댔다.


“브레스트(Brest) 근처에 살아요.”


그 순간, 그녀가 거의 소리치듯 외쳤다.


“세상에! 저 브레스트 살아요!”


공항의 소음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항공사 직원과 탑승객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만이 남았다. 내가 사는 도시의 이름을 말하자, 그녀는 마치 잃어버린 사촌이라도 만난 듯 반가워했다.


“거기 XX길에 있는 슈퍼마켓 알죠? 나 거기 근처 살아요!”


“당연히 알죠. 브레스트에 자주 가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다니기엔 너무 멀지 않나요?”


“아, 일할 때는 공항 근처 숙소에서 지내요. 하지만 내 진짜 집은 거기예요!”


그녀는 업무도 잊은 채 출입구 옆으로 자리를 옮겨 수다를 쏟아냈다. 자신의 집 근처 동네 지리를 읊는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다. 처음 본 나에게 집 주소까지 불러줄 기세여서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수다스러움이 싫지 않았다. 아니, 벅차도록 고마웠다.


나는 그녀의 업무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배웅하러 가봐야 한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수하물 위탁을 마치고 나서 어머니께 대화 내용을 통역해 드리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아들이 낯선 땅에서 혼자가 아님을, 어디서든 “나 여기 살아요”라고 말하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따뜻한 이웃들 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이해하신 것 같았다.


샤를드골 공항의 거대한 지붕 아래에서 있었던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작은 의식과도 같았다.


“당신은 낯선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우리와 같은 빵을 먹고, 같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같은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죠. 당신은 우리 중 한 사람이에요.”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이웃의 정다운 마음은, 내 마음속의 고립감을 완전히 지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방어 기제로서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 나는 브르타뉴 사람이라고.


(프랑스의 지역 커뮤니티에 게시한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