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고,
다리 저편으로 건너간다 생각하자고 하던 남편은
어느 날 문득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볍게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평소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살던 숨,
멈추니 그만이더군요.
큰 소리로 불러 봐도 몸서리치며 울부짖어도 그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배웅하는 식구들 모습 새기듯 보고 갔으니 외롭지 않았을 거라고만 믿습니다.
이승 줄을 놓아버린 남편의 얼굴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읽고 들으며 딴엔 열심히 공부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삶의 모습이 다 다르듯 남편이 가는 모습 또한 많이 달랐어요. 죽음 공부는 어쩌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앞서 남은 자가 살아낼 삶의 방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과의 마지막 밤은 섬망도 없이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만큼 의식이 명료했고 신체나 감정의 큰 변화 없이 차분했답니다. 갑자기 생각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 좀 다녀가라고 하더군요. 늦은 밤 호출받고 온 애들은 Good night 인사하듯 가볍게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제집으로 갔고요. 혈압이 떨어지지도 산소 포화도가 낮아지지도 가래 끓는 거친 숨소리를 내는 일도 없이 평범한, 그는 수시로 저를 부르고 저는 그러는 남편한테 그렇게 보고 싶으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던 밤이었어요.
다만 늘 옆으로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날은 반듯하게 누워 있더군요. 그렇게 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파리하게 웃으며 끄덕끄덕하더군요.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여 볼을 쓰다듬다가 어느새 볼 아래쪽이 유독 홀쭉해진 걸 알아차렸지요. 발이 좀 차가워진 듯해서 양말을 신겨야 하나 생각했고 눈동자가 노르스름해진 것도 같고 눈자위가 조금 거무스름해진 것 같았는데 제가 피곤해서 그리 보이나 여겼어요.
그러니까 운명하기 4시간 전쯤일까요. 평소와 다른 신음소리가 나서 많이 아프냐고 물었어요. 반응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애들을 다시 부른 것도 그 무렵이었네요. 한 시간 정도 신음과 이상행동이 이어지다가 잠에 빠지는 듯했지요. 그런데 호흡이 불규칙했어요. 정보를 통해 학습했던 체인스톱호흡이라는 게 이건가 하면서도 그 상황이 운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우린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답니다.
날은 밝았고 한 시간 후면 영양제 투여할 방문 간호사가 올 시간. 간호사님께 이상징후를 자세히 적어 문자를 보냈지요. 바로 전화가 와서 더 자세한 상황을 말하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바로 와보겠다고 하더군요.
번잡한 걸 싫어하는 남편은 병원에 갈 것까지 뭐 있냐는 듯 그야말로 문득, 평온한 모습 그대로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던 숨을 거두어 가버리더군요. 평생 살아온 모습이 그랬듯 참으로 단정하고 조용하게, 암 말기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콧줄이나 소변줄 한번 해보지 않고 삶의 끝 고요를 끌어안았습니다.
남편은 미리 예견하고 준비한 듯 저의 남은 생 내내 의지해 살아갈 말을 많이 남겨 두고 갔어요. 익숙한 자기 침대에서 아내와 딸 사위 손자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난 남편. 살아 있는 이가 바라는 품위 있는 죽음을 남편에게서 봤습니다.
남편이 갔다는 말을 쓰기가 쉽지 않아 주저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브런치에 남편의 병상 일지를 쓰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는데.... 그가 떠난 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자주 명치 아래가 답답합니다. 소화기에 문제가 있어 본 적이 없는 터라 무척 낯섭니다. 내과에 다니다가 침이 빠르다는 말을 듣고 한의원에도 갑니다. 괜찮아지는구나 싶다가 며칠 지나면 또 그러는군요. 섭생 때문만은 아니리라 혼자 짐작합니다. 시간이 약이겠지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이겠으나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는데
그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 제 속이
좀 편해지려나 싶어
여기에 중언부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말했듯이
저는 남은 자로 이렇게 살아 있으니
또 살아지겠지요.
고맙습니다.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