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무겁다 못해 팔 끝까지 아릿한 통증이 옵니다. 결국 비명을 지르는 몸을 달래며 한의원 문을 밀고 들어섰지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의사는 대번에 명쾌하고도 매정한 진단을 내립니다.
“과부하가 걸린 겁니다.”
과부하라니요. 나는 개울가에 앉아 산더미 같은 빨래를 치덕치덕 방망이질한 적도 없고, 뙤약볕 아래서 종일 들깨를 털어대지도 않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앞섰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이 몸뚱이 부려먹은 지 예순 해가 훌쩍 넘었으니, 기계로 치면 부품 곳곳에 녹이 슬고 기름기가 마를 대로 마른 구닥다리 모델이지요. AS 기간은 진작 끝났는데 몸이 만년 종인 양 굴려댔으니 탈이 날 수밖에요.
내가 짊어진 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퇴근하는 남편의 안색을 살피며 보약 같은 끼니를 챙기는 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 녀석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도란도란 저녁을 먹여 보내는 일…. 그런 자잘하고도 묵직한 일상들이 겹겹이 쌓여 어깨 위에 내려앉았던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나’라는 이름 석 자를 흐릿해지지 않게 지탱하려 안간힘을 썼던 그 마음의 태엽이, 이제 그만 쉬고 싶다며 비명을 지른 것이겠지요. 들깨를 터는 것보다 무거운 것은 어쩌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생의 하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침대에 엎드려 눅진한 한약재 냄새를 맡으며 부항을 뜨고 온 찜질을 하고 침을 맞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랜만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식을 내려놓았습니다. 살갗을 파고드는 침 끝의 따끔한 감각을 따라 팽팽했던 긴장이 스르르 풀어집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려왔을까. 무엇이 그리 급해 내 몸이 고장 나는 줄도 모르고 채찍질했을까. 고요하게 가라앉는 그 낯선 평온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지친 육신과 조우했습니다. 아파서 찾아온 병원 침대 위가 역설적이게도 내 생의 가장 느긋하고 달콤한 휴식처가 된 셈입니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고화질 화면처럼 선명하게 밀려듭니다. 길가의 단풍들은 언제 저렇게 온몸에 가을을 칠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을까요. 나비 떼처럼 나풀거리는 샛노란 은행잎들 사이로, 연인인 듯한 청춘남녀가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통증이라는 렌즈를 닦아내고 나니 비로소 세상의 여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집을 지나쳐 가는 버스가 저만치서 오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바쁘게 달려가는 것들에 나를 태우는 대신, 낙엽 뒹구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쪽을 택했습니다. 길가 좌판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들, 그 위를 평화롭게 애무하던 가을 햇살이 슬그머니 내 어깨 위로 건너와 앉습니다.
의사가 강제로 걸어준 이 ‘브레이크 타임’이 그리 싫지만은 않습니다. 낡은 부품이면 어떻고 고장 난 어깨면 어떻습니까. 이토록 환한 단풍을 볼 수 있는 멈춤의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졌는데 말입니다. 기분 좋은 쓸쓸함이 낙엽 밟는 소리마다 묻어납니다. 나는 어깨를 다독이며, 조금 더 길게 이 가을 속을 서성여 보기로 했습니다. 어깨 위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하지만 이 무게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