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복잡하게 살고 있다

단순한 삶을 향한 자성의 기록

by 마음의여백

“낙조를 담을 수 있을까!”


얼마 전, 나는 붉게 물든 석양을 담고 싶어 안산 구봉산의 해솔길을 올랐다. 해가 떨어져 가는 산길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목은 마르고 배는 고팠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미러리스 카메라 가방을 번갈아 메고 오르며, 흘러내리는 땀에 청바지는 축축해졌다. 오가는 사람은 드물고, 몇몇 외국인이 산 중턱에서 쉬고 있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왔지만, “더 빨리, 전망대까지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계속 재촉했다.


서둘러 걸었지만 해가 많이 기울어져, 200미터 앞에 있는 낙조전망대까지 가지 못하고, 언덕 위에서 겨우 수평선 너머로 떨어져 가는 해를 담았다. 사진 속 석양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또다시 무모한 고생을 사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둠이 내려앉은 하산 길을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가까스로 산을 내려왔다.

마감이 임박한 식당에서 아내는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숨고를 겨를도 없이 연신 물을 들이켰지만 갈증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내가 주문해 둔 저녁 식사를 허겁지겁 서둘러 끝냈다.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내 얼굴이 수척하다며 “고생을 사서 했다”라고 했다. 맞다. 나는 여전히 서두르고, 무엇이든 더 얻으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무모했던 일몰 산행의 고단함은 다음 날 여지없이 코밑이 부르터 물집으로 돋아나 있었다. 현직 시절 과중한 격무에 며칠을 과로하면 늘 그랬던 것처럼.


돌아보면, 구봉도에서의 산행은 평범한 기쁨을 놓치고, 어떤 목표를 향해 끝없이 쫓기던 내 삶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작년 이 무렵, 샤를 와그너의『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살아왔다』를 읽으며 다짐했던 ‘조급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나답게 살겠다’는 약속은, 그저 머릿속에 하얗게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복잡하게 살고 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일일 것이다. 해가 지는 바다의 빛과, 산길에 스며드는 바람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것을 놓칠 뻔했다.


지는 해를 향해 무모하게 질주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나를 다시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