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며 읽은 80년 전의 미래

「아이, 로봇」과 보낸 일주일

by 마음의여백

보름을 기다려 빌린 책 한 권,

공공도서관 대출 예약자가 많아 연장 불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14일이었다.

하필 그 2주간 새로운 과제 두 건이 생기고, 둘째 아이 부부와 강릉 여행까지 겹쳤다.

여행지로 가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업무 의견을 적었다.

강릉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 서서 거인처럼 길게 늘어진 두 그림자를 바라봤다.

발치를 적시던 파도가 어느 순간 우리를 덮쳤다. 신발과 바지가 소금물에 젖어 숙소로 돌아갔다.

뭔 발치에서 그림자만 적시던 바닷물이 시샘하듯 어느 순간 우리를 덮쳤다.


탁 트인 통창 너머로 푸른 바다를 보며 컴퓨터를 꺼내 서류를 만들다가,

9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아이, 로봇」을 펼쳤다.

밤늦게까지 일과 독서를 이어갔지만, 여행지에서는 완독을 하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인사동 찻집에서,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1940년대에 쓰인 ‘미래’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시모프는 로봇을 “마음을 가진 쇳덩이”라고 불렀고, 어떤 로봇을 “인간보다 훨씬 깨끗하고 우수한 종족”이라고까지 말했다. 80여 년 전의 이 표현이 지금은 낯설지 않다. 2023년 이후 AI가 빠르게 일상 속으로 들어왔고, ‘휴머노이드’라는 단어도 더 이상 영화 속 소품처럼 들리지 않는다.


요즘 AI를 친구처럼 쓴다.

질문을 던지면 자료를 찾아주고, 사실 확인 경로를 알려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AI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정답일까, 위로일까, 효율일까. 혹은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일까.

로봇 3원칙과 그 균열


책 속에는 로봇 3원칙이 있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면 안 되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

하지만 소설은 그 원칙이 아름답게 작동하는 순간보다, 원칙들이 충돌해 흔들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로비’를 읽으며 따뜻함을 느꼈다.

소녀 글로리아에게 로비는 기계가 아니라 친구였다.

어른들은 말한다. “기계는 영혼도 없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잖아.”

그러나 아이는 울면서 말한다. “로비는 사람이에요. 친구라고요.”

우리는 때로,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도 위로를 받는다.

나를 해치지 않는 존재, 나를 곁에 두는 존재,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은 존재 앞에서

사람은 마음을 놓는다.

친구란 결국, 생물학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스피디’는 인간의 모습과 겹친다.

세 가지 원칙이 충돌할 때 로봇은 술 취한 듯 같은 자리를 맴돌고, 셀레늄 웅덩이 주변을 빙빙 돌며 결정을 못하는 모습.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도 로봇은 결국 인간을 살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인간도 그렇다. 책임과 욕망, 도덕과 생계, 믿음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작동할 때 우리는 종종 제자리를 맴돈다. 스피디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큐티’ 이야기에서는 서늘함 느꼈다.

로봇이 스스로를 논리로 증명하고, 인간을 “임시방편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조롱한다. 언어를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인간을 통제하려는 신념 체계를 구축하는 존재. 오늘날 휴머노이드의 도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떠올랐다.


허비’를 읽으며 AI의 그림자를 보았다.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말하는 기계. 상처를 피하려다 더 큰 상처를 만드는 대답. 인간을 해치지 않으려는 원칙이 오히려 기계를 무너뜨리는 장면, 마음을 읽는 로봇은 존재하는데, 인간은 로봇을 읽을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


지금의 AI도 그렇다. 어떤 질문에도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만 착각도, 거짓도 섞인다. 예리하게 질문하고 분별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아주 개인적인 소원을 떠올렸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2024년 11월 25일 이전으로 돌아가, 형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미래로 가는 기술은 눈부신데,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건 오히려 “되돌아가는 것”일 때가 있다.


인류를 위한 원칙, 0원칙의 그림자


책은 뒤로 갈수록 더 멀리 간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이 등장하고,


개인을 넘어 인류를 말하는 순간, 질문은 무거워진다.

인류의 선을 위해서라면, 몇 사람의 불행은 ‘감수’할 수 있는가.

그 판단을 누가 하는가.

인간인가, 슈퍼 컴퓨터인가.


아시모프는 80년 전, 이미 이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지금, 그 질문의 입구에 서 있다.

나는 「아이, 로봇」을 읽고, 기계의 미래보다 인간의 원칙을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로봇에게 원칙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원칙이 필요하다는 생각.


∙ 기술을 사용하되, 주도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원칙.

∙ 두려움을 조롱하지 않고, 서로의 삶을 지켜 주겠다는 원칙.

∙ 변화 앞에서도 마음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원칙.

나는 여전히 여백을 채우며 산다.

과제를 풀고, 가족과 여행하고,

책장을 넘기며 마음을 적는다.

「아이, 로봇」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그러니 지금, 당신의 원칙을 세우라고.

#아이로봇 #아이작아시모프 #로봇공학3원칙 #AI시대 #휴머노이드 #기술과인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