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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철 Aug 04. 2024

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2-1. 계속 살아있도록 하는 자. 이집트미술

나일강이 다하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한마디로 나일강의 기적이다.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기적'이라는 것이다. 즉, 강의 범람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이집트인들에게 굉장한 축복을 주었다. 이러한 축복은 사람들을 나일강 주변에 정착하게 만들었는데, 예측 가능한 범람은 강 주변 어느 위치에 살아야 집이 물에 잠기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여 안전한 삶의 터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나일 강 하류에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부식토를 쌓이게 하여 농사가 잘되게 하였으며 자연스러운 지력 확보로 비료가 없어도 휴경이 없는 농경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고효율의 농경 조건을 갖춘 나일강의 삼각주지역에 인류가 정착하고 문명이 탄생한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이다.


이렇게 시작된 고대 이집트는 기원전 3100년 무렵 처음 통일되어 전제 군주인 파라오의 통치 아래 왕권을 이어 나갔다. 이 시기 메소포타미아와 에게 해 지역에서도 점차 문화가 발달해 가고 있었고 서로 교역도 이루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인 지정학적인 위치로 외세의 큰 침입 없이 오랜 기간 그들 만의 고유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기간이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한 기원전 332년까지로 약 3000년이란 세월을 독자적인 문명으로 유지할 수 있었으니 역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일 강의 주기적인 범람은 농사뿐이 아닌 기하학, 천문학, 측량술 등의 과학의 발전을 태동시켰고 십진법, 태양력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니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다했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약 BC 1500년 경 이집트 왕국



그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절대자를 태양이라고 믿어 태양신을 숭배하며 대자연의 신비를 태양의 다스림의 결과라고 생각하였고 그들을 다스리는 왕을 태양의 아들로 간주하여 '파라오'라 칭하며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하였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외에 내세적 다신교를 섬겼는데, 살아있는 현세보다 죽은 후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이 저승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반드시 육체가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시체를 정교한 방법으로 미이라로 만들어 얇은 천으로 그것을 감아 썩지 않게 했다. 피라미드는 이러한 왕의 미이라를 위해 세워졌다"_P 55/Story of Art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육체의 보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믿었다. 


석회석 두상 / BC 2500년 경

"왕과 닮은 형상을 보존할 수 있다면 왕이 계속해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이중으로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조각가들로 하여금 단단하고 영원 불멸한 화강암에 왕의 두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이집트의 조각가들은 본질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이외의 사소한 세부는 모두 생략해 버렸다. 아마도 인간 두상의 기본적인 형태에 대해 이처럼 엄격하게 집중했기 때문에 그 초상들이 그만큼 인상적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관찰과 도판 전체의 규칙성이 아주 고르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도판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동시에 아득하고 영원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 기하학적인 규칙성과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의 결합은 모든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형성한다.”

_P 58/Story of Art




이집트의 미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의 미술작품과 거리가 멀다. 신전은 신의 영원한 집이고 그림은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수단이며 조각은 신이나 인간의 영혼을 깃들이는 사물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집트의 미술은 앞서 언급한 선사시대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신이 정한 이 법칙은 엄격하고 일정한 형식이 성립하여 이집트만의 양식으로 계속 답습되었고 미술가는 이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는 기술자였다. 미술 제작에 종사하는 자는 곧 파라오를 섬기는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감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_P 58/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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