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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철 Aug 25. 2024

왜 그렇게 그렸니? 서양미술사

3-1. 클래식의 기원. 그리스 미술

그리스 미술의 산파, 크레타


기원전 2~3000년경, 세계 4대 문명 중 두 곳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은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유럽은 여전히 선사시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마구 올라가고 있었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해안가에는 페니키아안들이 에게해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해상무역을 통해 선진 문명을 이곳저곳으로 전파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특히, 이 무역로의 중심에 있었던 크레타섬은 중계 무역을 통해 미노아 문명을 형성하였으니 이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최초이자 유럽 문명의 기원이 된다.


에게해 주변 주요 문명국 / BC 1600년 경



크레타 문명을 미노아 문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크레타 문명의 정점이었던 미노스 왕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루스' 전설(제목의 배경이미지 참고)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크레타 예술은 지정학적 위치 상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예술의 영향을 받았으나 크레타만의 특징이 뚜렷하게 살아있다. 인근 문명권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중앙 집권적인 사원예술이 없다는 것이다. 인근 문명권은 강력한 왕의 통치하에 거대한 신전이나 무덤을 중심으로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받으며 예술이 발전하였으나 거대한 신전이 없던 크레타는 훨씬 자유롭고 경쾌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자주 보이는 주제가 황소, 문어, 돌고래 등이었으며 왕족이나 신관, 서민들인지 알아볼 수 없는 불특정한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특히, 다른 문명권에 비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이집트의 영향으로 정면성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도 보인다.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의 프레스코화, 투우사와 황소(좌), 여인들(우) / BC 1500년 경


크레타 크노소스 궁전에서 출토된 문어장식 도자기 / BC 1500년 경



이런 크레타 문명의 멸망에 관해 여러 추측이 있지만 테라의 화산 폭발 후 화산재와 이산화황에 의한 기후 변화로 흉년이 이어져 문명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입은 후 결국 미케네의 침공으로 멸망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때가 기원전 13~14세기이며, 이후 미케네 문명이 크레타를 대신해 그리스와 에게해를 이끄는 문명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이렇게 고도화된 미케네 문명에 대해 아주 간략한 언급만 남긴 채 바로 기원전 7세기로 퀀텀 점프하여 이때를 초기 그리스 미술이라 소개한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기원전 1200년경에서 약 8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미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미케네, 아가멤논 황금 가면 / BC 1500년 경


위 황금 가면은 실제 아가멤논 생존시기(기원전 1200~1250)보다 이전인 기원 1500년경 제작된 것이지만 발굴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처음 명명한 대로 불린다.



미케네, 전사들의 행렬 / BC 1200년 경



기원전 약 1200년경은 후기 청동기 시대로, 철기시대 초기로 전환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에게해 및 근동 지방에는 예상치 못한 폭력적 양상과 급작스런 사태가 발생하는데 학자들은 이 재앙을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라고 표현한다. 이 급작스런 재앙으로 인해 청동기 시대의 문명들인 그리스의 미케네,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트로이, 키프로스의 알라시아 등이 한꺼번에 몰락하며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는 역사를 다루는 학자들 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약 3가지 주장으로 모아진다.


1. 소빙하기에 따른 북유럽/인도계 민족의 남하 :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극심한 가뭄, 기근 등에 따른 대규모 민족 이동설로 기존 원주민들과의 전쟁, 약탈로 인한 정치세력의 붕괴.

2. 바다민족의 침략 : 여러 고대 기록 및 사료는 '바다 민족'으로 불리는 외부 집단의 침략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의 이동과 공격은 히타이트, 이집트와 같은 여러 문명의 붕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됨.

3. 지진 등 자연재해 : 동지중해 지역의 여러 유적지에서 지진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한 해일, 화산 폭발 등에 의한 붕괴.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 기간 파괴된 에게해 주변 및 근동 지역 문명들



위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있게 들리긴 하지만, 이 재앙으로 인해 고대 세계는 대규모 인구 감소와 무역 네트워크가 붕괴되어 사회적, 문화적 교류의 단절을 초래하였고 이로인해 지식과 기술의 전파가 끊기게 되어 각 지역의 문화적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예를 들어, 그리스 본토는 기존 원주민의 급격한 감소로 문자가 사라져 문화적 후퇴를 동반하는 암흑기로 접어들게 된다.


"최근의 견에 따르면 크레타인은 그리스 어의 초기 형태를 사용한 것 같다. 그 후에 대략 기원전 천년 경에 유럽으로부터 호전적인 종족들의 새로운 물결이 그리스의 험준한 반도와 소아시아의 해안까지 침투해와서 원주민들을 정복했다. 우리는 다만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서만 이러한 장기전에서 파괴된 당대 미술의 뛰어남과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는데 새로운 정복자 가운데는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는 그리스 종족들도 끼어 있었다." P 75/St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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