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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길 Apr 25. 2024

엄마는 착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날 엄마는 길을 잃었다. 그것도 엄마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주간보호센터 차에서 내리면 바로 107동 앞이다. 조금 걸으면 현관으로 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다. 평소 같으면 어렵지 않은 귀갓길이다. 현관을 향해 느린 걸음으로 걷다가 알게 된 가방의 존재. 아무리 살펴도 없는 가방을 찾으려고 뒤를 쫓아가 보았지만 이미 차는 가버린 뒤였다고 한다. 당황하면 알던 길도 놓치고 갑자기 눈앞은 캄캄하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리면 괜찮아지는데 엄마는 이게 어렵다. 기억을 잃은 엄마의 내비게이션은 그날 완전히 작동을 멈추고 말았다.      


 노인 돌봄 기관인 ‘주간보호센터’를 2년 동안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쉬운 비밀번호를 아무리 알려주어도 다음날이면 잘 모르겠다고 해서 동생이 전자키를 준비했다. “잘 가지고 다니세요.” 당부하며 핸드폰에 묶어 주었는데 하필이면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놓고 내린 것이다. 용돈을 넣어둔 봉투나 효도 지팡이를 잃어버린 일은 애교 수준이다. 없어졌다고 지장 받는 일도 없고 다시 드리거나 구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갈 방법을 모르는 일은 좀 다르다.      


 동생의 전화를 받고 놀랐다. 아니 두려웠다. “어디 다친 곳은? 청심환이라도 먹지 그래요.” 복잡한 마음을 숨기며 나도 괜찮은 척하며 물었다. 다행히 좋은 양반을 만나서 집으로 왔다며 얼굴도 모르는 내게 그를 칭찬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천사였던 그는 길을 잃고 헤매는 엄마를 보고 가던 길을 멈춘 아파트 주민이었다. “여기, 할머니가 길을 잃었어요.” 전화 통화를 하며 전후 사정을 감지한 동생은 부리나케 동호수와 비밀 현관 번호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좋은 이웃 덕분에 엄마는 물론이고 나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 많이 놀랐지요?”

 “늙으니까 그렇지 뭐.”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괜찮다고 하지만 한숨부터 내쉬는 모양이 여간 놀란 게 아니다. 이젠 걱정하지 말라고 평소와 같이 말하지만 미세한 떨림이 내 귀에는 들렸다. 치매 걸린 노인네처럼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 눈빛과 어린애처럼 다시 집을 잃고 싶지 않다는 불안함이 복잡하게 묻어있었다.     


 엄마도 이제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헷갈리지만 여기까지 인정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 자신조차 모를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었고, 가족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는 그만큼 이 질병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치매’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끔찍한 병으로만, 간병하는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것으로만. 딱 그 정도였다. 모르니까 막막했고 부인하고 싶었다.    

  

 마음이 가는 일은 눈과 귀가 열리며 온 신경이 몇 배로 곤두선다. 텔레비전을 봐도 책을 읽다가도 ‘치매’ 관련 기사나 이야기만 눈에 띄었다.  

    

 제목이 친절하고 다정해서 꼭 읽고 싶었다. 「치매 때문에 불안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이다. 나는 좀처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빠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제목이 주는 효과는 컸다. 노모를 모시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가의 조언은 나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중 ‘치매에 걸려도 정상적인 삶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회초리처럼 아프게 때렸다. 세상이 무너진 듯 엄마의 치매를 동생들에게 전했고, 챙기면 챙길수록 안되는 현실이 답답해서 짜증을 내던 나를 보았다. 책임감에 찌들어 제대로 보지 못한 나를 내다 버리고 싶었다.      


 “긴 수명을 누려서 좋은 만큼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게 바로 ‘치매’입니다.”

 엄마를 보며 불안한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치매 전문가의 이 말 덕분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가 보다. 100세까지 아직도 남은 나이라고 더도 덜도 아닌 반으로 깎아주면 좋으련만 내야 할 세금은 어김없이 벌써 나온 셈이다.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하면서 물리고 싶지만, 옛날에 비해 장수했으니 그 정도 세금은 당연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치매’를 ‘세금’으로 비유하다니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획기적인 발상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게도 나올 수 있는 세금이라고 인정하니까 좀 편해졌다.   

   

 엄마는 지금 예상치 못한 ‘인지저하증’ 즉 ‘치매’에 걸렸을 뿐이고 오래 사시는 만큼 착실하게 세금을 내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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