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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달 살기

제주 좋은 빛 함께 봐요.

by 리 상

제주 한 달 살기 유행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업무 상 한 달간의 공백으로 필자도 틈을 내어 제주에 한 달 살기를 작심하고

두 달에 걸쳐 동선을 짜고 숙소를 예약하고 맛집을 검색하였다.


계획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어느 곳에 머물며 어디를 봐야 하는 숙소와 볼 장소를 확정 짓는

것이다. 실제로 미리 가볼 수 없으니 홈페이지나 유튜브 , 블로거 등을 검색하며 평가를 나름대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임을 여행 계획을 짜 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우선 , 한 가지 원칙적으로 정한 것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

보통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려는 분들의 공통된 점은 한 숙소에 머물며 유명 관광지를 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지만 , 나의 목적은 그것과 달랐다.

제주의 많은 빛과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었다.

제주는 생각보다 작은 섬이 아니다. 제주 서귀포 이동도 1시간이 걸리고, 해안길 일주도로를 다 돌려면 족히 4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최소한의 이동거리를 줄여야 한다.


제주를 크게 등분하여 , 숙소를 12군데 예약하여 한 군데 숙소에서 평균 3박 4일 정도로 머무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도와 가파도에서의 각각 1박을 포함하여,

호텔과 펜션을 섞어 넣어 변화를 꾀하고 가격대는 10만 원 기준으로 정했는데, 펜션은 9만 원대이고 호텔은 10~12만 원 대가 대부분이었다. 서귀포시내에서는 아주 저렴한 6-7만 원대 호텔인데도 쾌적한 호텔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달 경비는 보통 4-5백만 원 드는 것으로 보이는 데 정확히 영수증 정산처리를 하지 않았지만 숙소를 많이 옮기므로 나의 경우는 7백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이동 동선은 애월, 한림, 강정, 협재, 안덕, 모슬포, 중문, 서귀포, 하례리, 남원, 표선, 성산, 함덕, 조천 등으로 제주 서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정했다.


아내와 함께 한 여행 이므로 체력 안배가 큰 필수 요소였는데 다행히 무리 없이 잘 따라주어 고맙고 감사하다.

사실 제주 한 달 살기가 아니라, 제주 한 달간 여행이란 쪽이 맞을 것이다.

매일 집중적으로 사진 찍기를 하면서 무거운 dslr카메라의 부담 때문에 나중에는 등에 통증이 와서 가벼운 똑딱이 GR2와 스마트폰을 주로 담기도 하였다.


최초 계획한 12곳의 숙소는 결국 3곳을 병합하여 9곳으로 줄어들었지만 그것도 짐 싸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서울에서 차량을 택배처럼 집에서 부치면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편리하였다. 4년 전 제주를 찾았을 때만 해도 렌터카 비용이 아주 저렴하여 소형차 기준 2-3만 원대였으나, 지금 제주 사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제주로 오는 국내 관광객 수 폭증으로 렌터카 비용은 일일 13만 원까지 치솟았고, 그것은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니.

차량 탁송 서비스는 왕복 66만 원으로 이용하였다.


도시 사람들은 제주를 바다로 보러 가지만, 제주 현지 사람들은 바다로 가지 않고 오름으로 간다.

40여 년 전 제주에서 3년을 살았던 필자는 그때는 오름이란 단어조차 들어본 일 없었고, 제주는 한라산만 있는 줄 알았던 시절이었으니 이번 여행에선 꼭 몇 개의 오름 등반을 계획하였다.

제주시에 사는 옛 직장동료 부군이 오름 전문가로 오름에 관한 책을 2권을 발간한 작가와 만나서 참 유익한 시간도 보냈다. 제주 오름이 368개나 있다는 것. 오름이 암, 수 양성이 존재한다는 것. 굼부리가 있는 오름은 암 오름이고, 굼부리 없이 뾰족한 산등선이 만 있으면 숫오름이라나.

새별오름도 봉곳한 봉우리만 있어서 숫오름인 줄 알았는데, 뒤 쪽에 별 모양의 굼부리가 있어서 새별오름이며 암 오름이란 것. 역시 알면 남다르게 보이고, 모르면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감명 깊은 오름은 역시 큰 노꼬메 오름, 백약이오름, 새별오름, 궷물오름, 군산오름 등인데

다음 여행에선 더 많은 오름을 올라봐야겠다. 특히 영주산 오름을 오르고 큰 감동을 받은 친구 말을 듣고

그 오름은 꼭 올라가 보리라.


제주에서 좋은 빛과 바람, 구름과 돌, 섬과 바다, 오름과 올레길 등을 사진에 담았다.

정리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정리된 사진을 모아 책을 낼 생각으로 교보문고에 POD 출판을 의뢰하였고, 유페이퍼에 전자책 출판도 의뢰 중이다. 첫 출판을 시도하는데 무척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무엇보다 가로 사진을 워드로 작업하는데 2쪽에 걸쳐 사진을 편집하는 기능이 취약하는 데 있다. 또한 사진집이므로 인화지의 품질이 아주 중요한데 일반적인 책 종이질로서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미 신청하였으므로 일단 기다려본다.


제주를 2박 3일, 4박 5일 단기 여행으로는 결코 제주를 다 볼 수 없고 깊이 느낄 수도 없다.

한 달 살기가 아니라, 한 달 여행을 하면서 구석구석 관광지가 아닌 제주 숨어있는 곳까지 보려고 노력했지만 반의 반도 못 본 것 같다. 김영갑 사진작가가 제주를 사랑하다 제주를 오고 가다 결국 제주에서 살며 제주 풍광을 앵글에 담다 루게릭병으로 제주에 묻힌 그의 예술혼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제주는 한 달 살기가 아니라, 일 년 살기 아니면 최소 석 달 열흘 100일은 살아보아야 제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다시 또 언제 제주 여행을 계획해 볼까.


* 위 글은 교보문고에서 이미 출판된 졸저 "제주 좋은 빛 함께 봐요"

사진집 에필로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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