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향기의 힘에 대해 알게 된 가을줌마

by gaeulzuma


향수 사주세요.

초등 5학년 때 생일선물은 향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향에 민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생일 선물로 향수를 사달라고 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워낙 어려서부터 어린이용 화장품도 바르고 어린이 향수도 뿌리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향수를 뿌리는 아이들은 없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성숙한 아이들 몇 명만 향수를 뿌렸을 정도로 향수 뿌리는 아이들은 흔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일선물로 향수를 사달라고 하는 것이 나조차도 이상하게 생각됐다. 아직 향수 쓸 나이가 아닌데 '난 왜 향수가 갖고 싶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 몸에 향기를 뿌려서 어딜 가든지 언제나 좋은 향기를 맡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나 자신조차도 이해가 안 됐지만 향기에 대한 관심이 컸던 나는 용기를 내서 부모님께 향수를 선물해 달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조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행히 별다른 질문 없이 향수를 사주셨다. 이게 내 인생 첫 향기이다.



가을줌마, 향수와 멀어지다.

향수는 향기가 될 수도 역겨운 냄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원해서 받은 선물이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학생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찾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의 노력과 저렴하지 않았을 향수 금액이 아깝지만 세월이 지나 짐을 정리하면서 처분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나는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매일 버스를 2번 갈아타면서 다녔던 기관이 있었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 내가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뿌린 향수 냄새가 온통 뒤섞여서 역겨운 냄새를 만들었다. 어떤 때는 이런 냄새로 인해 약을 먹을 정도로 심한 두통이 생겼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향수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향수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나를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인식시키거나 향기를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닌 내 기분을 좋게 유지시켜 주기 위한 용도로 향수를 사용한다.




내 공간이 생겼다.

내 몸에만 관심 있던 가을줌마,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기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전까지는 내 몸에 대한 향기에만 관심이 가득했는데, 결혼 후 내 집이 생기자 집이 향기로워지는 지길 바라는 것으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양키캔들'과 '오일버너 램프'를 사용했다. '양키캔들'과 '오일버너 램프'는 두 가지 모두 불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고, 불이 꺼질 때 그을음 냄새난다. 엄마가 된 아이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해가 가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출산하고 감각이 더 예민해진 걸까?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그을음 냄새가 이제는 자꾸 거슬렸다. 그리고 그을음이 아이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그렇게 '양키캔들'과 '오일버너 램프'는 우리 집 찬장 안에 들어가게 됐다. (지금은 아이들이 없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오일버너 램프를 사용한다.)


하지만 향기에 대한 나의 사랑이 줄어들 수 있을까? 지금까지 써오던 제품들을 사용하지 않게 된 후 내가 새롭게 관심 갖게 된 것이 바로 디퓨저다. 초반에는 디퓨저가 고급화 전략에 따라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에서 판매돼서 구매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2010년 중반부터는 대중화가 되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이 되었다. 그래서 난 첫째와 함께 집 근처 백화점에 가서 직접 디퓨저의 향을 맡아보고 마음에 드는 향을 골랐다. 그리고 우리 집은 내가 고른 향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향기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들

우리는 향기로 상황을 먼저 알 수 있다.


2020년, 어느 날 갑자기 아이와 나는 집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됐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돌면서 모든 외출은 중단됐다. 창문 열기도 조심스럽고, 아이와 둘이 답답한 집에서만 생활하게 됐다. 코로나와 함께 일, 교육, 운동, 문화생활 등등 모든 것들이 집 안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예전만큼 흥이 나지 않았다. 집중도도 떨어졌다. 무슨 일을 해도 조금 하면 지루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온 집안이 같은 향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 문제였다.


공감이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함께 상상해 보자.

- 커피숍에 갔다고 상상해 보자.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무엇이 느껴지는가? 바로 향긋한 커피 향이 가장 먼저 느껴질 것이다. 이 커피 향기 덕분에 우리는 분위기 있고,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 커피숍에 갔는데 커피 향기 대신 고급스러운 디퓨저 향기가 난다면? 향은 좋겠지만 온전한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 치과를 상상해 보자.

'치과'하면 떠오르는 향이 있는가? 무조건 있을 것이다. 치과는 유난스럽게 치과만의 향이 난다. 아마도 강한 소독제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치과 냄새는 나를 긴장시키는 향이다.


- 서점에 갔다고 상상해 보자.

책 냄새, 종이 냄새가 상상되는가? 하지만 우리나라 대표 서점 중 한 곳, 교보문고에 가면 책 냄새는 나지 않는다. 대신 교보문고만의 향기를 사용한다. 나는 책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내 친구는 교보문고 향의 디퓨저를 구매하고 싶다고 할 만큼 교보문고 향기를 좋아한다. 이 향기를 맡으면 자연스레 '아, 교보문고에 왔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공간마다 본연의 향을 갖고 있다. 향기는 우리의 감정을 바꿔주고, 마음가짐을 바꿔서 집중력을 높여 줄 수도 있다. 향기로 우울했던 감정을 끌어올릴 수도 있고, 들떠 있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있고, 긴장되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통해 나는 향기의 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집의 공간마다 다른 향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의 향기는...?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거실은 내가 블렌딩 한 꽃 향 디퓨저가 있다. 화장실과 주방 냉장고에는 상큼한 향기인 레몬과 오렌지 향이 난다. 학생인 첫째 아이 방은 낮과 밤 이렇게 다른 향기를 사용한다. 낮에는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레몬과 로즈메리 향을 사용하고, 저녁에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들기를 바라는 마음에 라벤더 향을 사용한다. 저녁에 사용하는 라벤더 향은 첫째 아이 방뿐만 아니라 우리 집 전체에 사용한다.

우리 가족 모두 편안하고 행복한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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