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 재즈

군대

by 허지현

군생활을 하다 보면 각자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밖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이를 지속하거나, 평범하게 공부나 운동을 하기도 했다. 나와 마음이 잘 맞는 몇몇 이들은 한량 놀이를 하고 지냈는데, 보통 정적이 활동이 많았다. 차나 커피 내리기, 독서하기, 음악 감상, 글 쓰기 등이 주된 일이었다. 이를 활용해서 나름의 취향을 만들어나가곤 했다. 오늘은 그중에서 음악, 특히 재즈 관련된 얘기를 해보겠다.


지금과는 다르게 나는 생각보다 음악을 자주 챙겨 듣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가끔 멜론 차트 Top 100을 반복재생하거나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을 찾아 듣기만 했지, 딱히 취향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굳이 골라보자면 애니메이션의 취향 정도만 있었다. 그렇게 이맘때쯤 만나게 된 작품이 "언덕길의 아폴론"이다. 일본 60년대의 나가사키 현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고등학생들을 다룬 청춘물의 작품으로, 재즈라는 장르를 처음 제대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늘 그렇듯 OST를 찾아보고, 그 원본을 찾아보다 보니 점점 더 재즈라는 장르에 빠져들었다.


재즈의 역사를 설명하는 "재즈북"을 사서 읽으며 재즈의 전신인 래그타임과 블루즈 장르부터 스윙, 빅 밴드, 비밥, 쿨, 하드밥, 펑크 재즈, 퓨전 재즈까지의 이야기를 읽고 찾아 듣곤 하였다. 선임이 전역하며 놓고 간 CD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집에서 구워온 CD나 주말에 동성로를 누비며 구한 재즈 음반으로 노래를 들었었다. 대부분은 아티스트별로 5개의 앨범을 묶어놓은 가성비 세트지만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CD들이다. 주로 빌 에반스,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 클리포드 브라운, 케니 부렐,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호레이스 실버 등등 굵직한 아티스트들 위주로 골라 들었다. 노래도 재즈계의 바이블처럼 다뤄지는 리얼북 위주의 노래를 듣다 보니 마이너 하진 못하고 얕게 겉햛기 수준으로 찾아들었지만, 그래도 재즈가 주는 그 특유의 모호함과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좀 뻔하지만 쿨 재즈와 쳇 베이커가 제일 좋았다. 특히 빌 에반즈와 쳇 베이커가 합주한 세션 앨범을 저녁마다 틀어놓곤 했었다. 처음에는 생김새 때문에 무의식적인 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해보았지만, 여러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어도 베이커의 그 특유의 지질함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가로 치면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특히 그의 기이한 삶을 보면 "인간 실격"이 생각나기도 한다. 우연히도 군생활 와중에 그를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가 상영하여 이도 관람하였다. 영화 자체는 그저 그랬고 "위플래쉬"를 더 좋아하지만 아무튼 베이커의 연주는 지금까지도 좋아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스포티파이를 통해 노래를 듣고, 재즈보단 다른 장르들을 많이 듣는다. 그래도 이따금씩 재즈가 고플 때는 이때 들어놓은 노래들 중 하나를 찾아 듣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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