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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부꾸미 Nov 12. 2022

엄마가 유럽여행을 떠나면?

엄마 말고 아빠 밥이 걱정?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진짜로 엄마와 무려 2주 가까이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부모님 댁을 방문하여 앞으로 가게 될 여행에 대해 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나는 계속해서 여행 일정에 대해 얘기하는데, 엄마는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딱 김장철에 떠나네. 그럼 그 전 주에 김장을 미리 해둬야겠어. 김장해서 저녁에 수육이랑 같이 너네 집에 가져다줄게."

엄마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나는 자꾸만 맥이 빠진다.

"아니 엄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곧 떠난다니깐~ 엄마 대도시가 좋아, 소도시가 좋아?"

"엄마는 그냥 너 따라다닐게."

애써 챙겨 온 프랑스 여행 가이드북이 머쓱해지는 순간. 엄마가 하나라도 더 많이 알고 가셨으면 해서 부랴부랴 주문해서 가지고 온 책이었다.


그러던 중 말씀하신 아빠의 한마디.

"2주나 여행을 가면 밥은 어떡하나."

'그렇지. 2주간 우리나라를 떠나 있으니 한식 좋아하는 우리 엄마 식사는 어쩌지. 역시 나 못지않게 아빠도 내가 근 몇 주 간 하고 있던 고민을 이해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야 워낙에 현지식을 좋아하고 현지에서 한 끼라도 더 즐기고 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엄마는 한식러버이시자 고기도 그다지 즐기시지 않고, 짠 음식도 싫어하시기에 유럽 음식이 맞지 않으실까 봐 나 역시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아침은 되도록 새벽에 갓 구운 유럽의 식사용 빵이나 견과를 곁들인 그릭요거트, 현지 과일, 샐러드. 점심 한 끼는 선택의 여지없이 외식으로 현지식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저녁은 숙소에 돌아와 일찌감치 쉬면서 챙겨간 한식을 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면 에어비앤비에 머무는 날에는 현지 마트에서 식재료를 공수해서 직접 요리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듯 나도 사뭇 진지한 고민을 내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혼자 '그래도 내겐 다 생각이 있지.'하고 나름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기 전에 이렇게 바쁜 거야.  남자 먹을 것도 챙겨놓아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고."

잉? 엄마의 이건 무슨 소리람.

그렇다, 아빠는 엄마와 나의 끼니를 말씀하신  아니었다. 엄마가 부재한 기간 동안 본인과 아들이 2주간 드실 끼니를 걱정하신 거였다. 나와는 달리 엄마는 당연히도 아빠의 발화 의도를 알아채셨던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이 다 있나. 이러니 엄마에게 아무리 파리 이야기를 해도 시큰둥한 반응이셨던 거다. 엄마에게 여행은, 특히 해외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가는 것이기보다는, 패키지여행이 그러하듯 주어진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행은 막상 가있을 때보다 떠나기 전이  좋은 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여행 전에 루트를 정하면서, 루트가 정해진 뒤에는 여행지에 대한 세부 계획을 짜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상을 보내곤 한다. 그렇지만 엄마는 해외여행에 관해서만큼은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신 경험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선호에 따른 여행루트 결정이나 사전 정보 수집의 필요성 같은 것들을   느끼셨다. 그것보다는 부재의 기간 동안 본디 당신이 수행하셨어야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다는 사실 관심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2주간 집에 두고 가는  남자의 끼니 준비  김장이 당신의 여행 준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여행 가이드북을 부모님 댁에 두고 왔고,  뒤로도 여전히 프랑스와 관련된 여행 유튜브를 엄마에게 공유한다.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가 능동적인 여행을 즐기게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책에서 봤던 그곳, 유튜브에서 소개되었던  장소에 왔네' 하면서 신기해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엄마도 '나는 이건  맞고, 이건 좋은  같다.'라고 취향과 선호를 밝힐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정립된 여행 스타일을 바탕으로 점점  풍성한 여행을, 인생을 즐기실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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